미국 정부가 반도체·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함에 따라 최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다시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더 강력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28일(현지시간) 반도체·AI·양자컴퓨팅·마이크로전자기술 등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최종 규칙은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해당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를 진행하려는 기업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재무부에 신고해야 한다. 또 중국은 물론 홍콩과 마카오까지 '우려 국가'로 규정했다. 사실상 중국에 대한 미국 자본의 최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전면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앞서도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연이어 내놓았고, 중국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내년에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하기 위해 반도체법을 제정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인텔 등 자국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에 따라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으로 총 390억달러(약 53조8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대출 및 대출 보증으로 750억 달러(약 103조5000억원)를 추가 지원하고 최대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일본·네덜란드 등 동맹국을 상대로 도쿄일렉트론·ASML 등 반도체 장비업체의 중국 내 활동 제한을 강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 의회는 반도체법의 지원 아래 건설된 미국 공장에서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첨단 기술 자립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440억 위안(약 66조4000억억원)에 이르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일명 대기금) 3차 펀드를 추가 조성했다.
이 기금은 고사양 반도체 기술 자립과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먹거리인 AI 반도체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기업들도 반도체·AI 투자를 앞다퉈 늘리고 있다.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의 지난 상반기 설비투자 합계는 500억 위안(약 9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230억 위안(약 4조3000억원)의 2배 이상이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에도 지난해 중국 파운드리업체 SMIC(중신궈지)가 만든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스마트폰 '메이트 프로 60'을 출시해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미국의 기존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첨단 분야에 집중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제재에서 한발 비켜선 범용 반도체(레거시) 부문을 '전략적 구멍'으로 판단해 이 부문에 대한 투자도 늘려왔다.
또 희토류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광물에 대한 생산·수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최첨단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해 투자까지 제한하고 나섰지만 이미 미국 자본의 대중국 투자가 감소세라는 분석도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중 갈등으로 이미 중국에 투자된 미국 벤처 자금 규모가 최근 1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 보고서를 보면 해당 자금 규모는 2018년 144억 달러(약 19조8000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13억 달러(약 1조8000억원)로 90% 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한 익명의 전문가는 이번 규칙이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말에 발표된 것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음 달 5일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해당 규칙을 없애고 더 강력한 제한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미 기업연구소(AEI) 데릭 시저스는 대선이 불과 8일 남은 시점에서 규칙이 마무리됐다면서 “완전히 쓸모없다"고 비판하면서 “3개월이면 됐을 일에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