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가 ‘악수’로…새 국면 맞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11.04 08:00

조달 자금 95%, 채무 상환에…주주가치 훼손 비판

유증 관련 부정거래 의혹에 주가 급등락세 펼쳐져

‘캐스팅보터’ 국민연금 선택은 어디로…관심 집중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와 관련해 부정거래가 확인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기로 하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명분을 잃었다. 설상가상 캐스팅보터로 꼽히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 유상증자 계획 시점 등 부정거래 조사 착수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와 관련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31일 고려아연 공개매수 주관사이자 유상증자 모집인인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하고 부정거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유상증자 계획을 모두 알고 공개매수를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증권신고서에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으로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11일 제출한 공개매수신고서에 “공개매수 이후 재무구조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유상증자를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면 해당 내용은 허위 기재로 볼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달 3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증권신고서가 올바르게 공시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정정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해당 증권신고서의 효력발생일이 오는 14일인 만큼 이전에 정정 요구를 할 전망이다.




조달 자금 95% 채무상환에 사용…최 회장 명분 잃어

업계 안팎에서는 최 회장 측이 유증을 추진하는 납득할 만한 명분을 제시했더라면 지금처럼 논란이 거세진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하는 자금 2조5000억원 중 2조3000억원을 채무상환을 목적으로 조달한다고 공시했다. 이에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쓰인 공개매수대금을 주주들로부터 회수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 회장은 유상증자를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MBK 측 지분율을 낮추려 했지만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나오면서 '악수'가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유증 목적이 인수합병(M&A) 등을 위한 자금 조달이었다면 명분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최 회장의 '악수'는 향후 정기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는 데도 방해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어 캐스팅보터로 꼽힌다. 현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지분율은 35.40%, 영풍·MBK 연합은 38.47%를 확보하고 있어서다.


앞서 국민연금은 매년 주총에서 고려아연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상증자 결정과 관련한 논란 때문에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활동에관한지침 제6조에 따르면 기금은 투자대상 주식 등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함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재무적 요소 측면에서 봤을 때 현재 금감원이 고려아연의 부정거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주주가치 훼손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에 힘을 싣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증 발표에 주주들 분노…고려아연 주가 롤러코스터

시장에서도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증은 자본시장 관점에서 시장교란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의 주인이 주주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라며 “한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울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꼬집었다.


주주들도 반발했다. 고려아연 주가는 유증 공시 이후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2거래일 만에 35% 급락했다. 150만원에서 이틀 만에 80만원대로 밀려난 것이다. 이후 금감원이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면서 유상증자 무산 가능성이 높아지자 지난 1일 주가는 다시 100만원대로 올라섰다. 시장에서 이번 유증 소식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고 국민연금도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졌다"며 “최 회장이 무리해서 내민 유상증자 카드가 결국 자충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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