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약집 배터리 보조금 반대 기조 뚜렷
보조금 축소는 기정사실…장기적 수요도 위축
미·중 갈등으로 중국산 제재 반사이익만 살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컴백'에 따라 우리나라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터리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우선 미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3사가 올해만 1조3787억원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장기적인 전기차 배터리 수요에 있어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이 심각해진다면 국내 배터리사의 입지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중국이 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무역갈등으로 중국산 배터리의 입지가 위축된다면 그 빈자리의 상당 부분을 국내 배터리 사가 차지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7일 배터리 업계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국내 배터리 3사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트럼프 전기차 전환 부정적 입장…국내 배터리 3사 보조금 축소도 주장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 도전 공약집 '어젠다 47'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비판하며 전기차 전환 및 배터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축소를 주장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힘입어 실적을 높인 것은 물론 미국 현지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국내 배터리 3사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트럼프는 전기차를 포함한 에너지 전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매우 비싸고 무거워 자동차를 100% 전기차로 전환할 수 없다"며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특히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배터리 3사에 악재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그동안 북미를 '기회의 땅'으로 간주하고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왔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목표한 생산 능력을 합산하면 북미 지역에만 연 600GWh(기가와트시) 이상으로 집계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현대차를 비롯해 GM, 스텔란티스, 혼다, 포드 등과의 합작법인(JV) 설립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IRA 시행으로 인한 수혜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그동안 국내 배터리 3사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로 올해 1~3분기까지 합계 1조3787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수령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이 1조1027억원으로 가장 큰 혜택을 봤고, SK온도 2111억원, 삼성SDI도 649억원에 이른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보조금이 없었다면 국내 배터리 3사 대부분이 올해 흑자를 유지하지 못하고 적자로 전환됐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미국에서 IRA의 '전면 폐지'는 어려워도 보조금 예산 축소 등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내년 4조원 규모로 예상됐던 국내 배터리 3사의 보조금 수령 규모가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배터리 제동 걸리나…“자국 우선주의 대비" 지적도
또 집권 1기와 마찬가지로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상대국에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모든 수입품에 이전에 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배터리를 넘어 국내 산업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다만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산 배터리의 입지 위축으로 국내 배터리 3사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각해진다면 중국산 배터리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한국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점유율 합계는 전년 대비 3.4%포인트(p) 줄어든 20.8%에 그쳤다. LG에너지솔루션이 12.1%(점유율 3위), SK온이 4.8%(5위), 삼성SDI가 4%(7위)였다.
반면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을 확대했다. CATL은 전년 대비 점유율을 0.9% 늘리며 36.7%로 글로벌 1위를 유지했다. BYD도 0.5% 점유율을 늘리며 16.4%로 2위를 지켰다. 이밖에도 CALB, 고션, EVE, 신왕다 등의 중국 업체가 점유율을 늘리는데 성공했다.
이 같이 거센 기세로 성장하는 중국 배터리 업체가 위축되고 국내 3사도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고 있는 만큼 중국의 빈자리 전부를 국내 배터리 3사가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배터리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첨단 기술에 대해 지원을 축소하거나 우리 기업의 해외 수출에 제동을 걸 우려가 있다"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것에 대비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생산 거점을 다양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