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화 실패시 제품경쟁력 상실·좌초자산 발생 따른 지역경제 쇠락 우려
프랑스, 탄소배출량 토대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서 韓·中 대거 탈락
‘그린철강’ 생산 위한 해외 사례 벤치마킹 촉구…정부·밸류체인 협력 필요
철강산업이 RE100을 달성하면 해당 업종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동차와 조선 등 수요산업의 수출길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조상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철강이 그 자체로 주요 수출품이지만,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탄소배출량으로 인한 직·간접적 무역제제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저탄소화에 실패하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EU향 철강재 수출을 위한 탄소 차액 추정치 이상의 피해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연구원은 지난해 녹색산업법을 통과시킨 프랑스가 자동차에 사용된 소재들의 탄소배출량을 근거로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과 중국 전기차를 대거 탈락시킨 사례를 들었다. 국내 기업들이 멕시코를 통해 우회 수출하던 루트도 탄소배출량 기반 규제 적용시 좁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알루미늄·카본섬유·나노셀룰로오스를 비롯한 소재를 활용해 자동차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으나, 철강은 앞으로도 차량 무게에게 30~50%를 차지하는 주요 소재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 탄소배출량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BAM과 관련해서는 “EU에서 생산한 강재가 다른 나라보다 얼마나 친환경성이 높은지, 판가는 어느정도로 잡는지와 국내에서 저탄소 강재를 만드는 비용과 탄소차액간 차이가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100을 위한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 및 안정성이 유의미하게 개선되면 기업들이 EU에 차액을 지불하는 것보다 더 큰 단기 손실이 발생해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유인이 생긴다는 논리다.
조 연구원은 “업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고로 60%, 전기로 40% 비율까지 합탕할 때 고로 100%와 유사한 품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전기로에 RE100이 이뤄지면 t당 탄소배출량을 2.3tCO2e에서 1.3tCO2e로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철강' 시장 활성화되면 탄소 차액을 줄일 수 있으나, 현재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철강은 제조 공정에서 화석연료를 쓰지 않음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한 제품이다.
조 연구원은 “수요산업은 철강사가 만들지 않아 구매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철강사는 사겠다는 확약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국면을 타파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협의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으나, 정부가 경제산업성 주도로 '그린철협의회'를 만든 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그린스틸의 개념과 구매자-판매자의 비용 분담 방안 및 정부 지원책 등의 해법을 제안한다"고 소개했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고, 토요타 등 수요기업들이 철강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국제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저탄소 강재 공급망을 갖추기 위한 조치다.
조 연구원은 “철강사들이 수요에 대해 어느정도 신뢰를 갖고 기술 개발 및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며 “그린스틸 생산량이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및 수소 사업자도 이에 맞춰 투자를 결정하는 등 다각적인 연쇄효과가 발생한다"고 발언했다.
그린수소 비용을 낮추려면 철강산업에도 인센티브를 적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경제성 있는 그린수소를 수소환원제철에 활용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센티브가 청정발전 입찰시장을 통한 발전비용 보상이 전부인 까닭이다.
철강 등 전력소비량이 많은 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와 해상풍력 고도제한 규제 온화를 통해 공급량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수소와 같이 에너지 형태를 전환해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철강에서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지역경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국내에서 수출되는 강재 대부분이 고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고로강재를 퇴출하고자 한다면 설비들의 자산가치가 상실된다는 이유다.
경쟁국 대비 뒤쳐진 국내 재생에너지 및 수소 시장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국내 고로를 폐쇄하고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연구원은 “호주가 그린수소 수출을 넘어 해외 철강사들이 직접 환원철 제조설비와 철강 생산시설을 자국에 구축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은 '산업 엑소더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탄소집약적 산업군의 대표주자인 철강이 탈탄소를 달성하고 화석연료 기반의 철강이 그린스틸로 전환될 수 있도록 연구와 활동을 하는 단체로, 2021년 11월 첫 철강보고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