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우리 당 일임”은 또 다른 헌정유린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12.09 11:02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강윤 정치평론가

12.3 계엄은 정치-사회적 충격 못지않게 중대한 법적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국민 담화에서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안정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 향후 국정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며 '질서있는 퇴진'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우리 당 일임, 여당대표-총리 국정운영'은 헌법유린



두 발언은 중대한 법적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위임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 또 여당(국힘) 대표는 정치적 지위이지 법률적 지위가 아니므로 대통령이 여당 대표에게 “이제 자네가 맡아서 해보소"라며 넘겨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법률가이기도 한 대통령과 국힘 대표에게서 이런 비상식적 발상이 나온 것에 경악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대행자를 지정한다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이다. 지금이 왕조시대인가. 국가기관의 구성원도 아닌 여당 대표와, 아직 대통령권한대행자가 아닌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을 대행하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헌법 유린이다. 헌법 상 대통령직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만 권한대행이 가능하다. 탄핵, 궐위나 사고, 사임으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때이다. 이 세 가지 외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가 대행되는 순간 위헌이다. 정통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한-한' 라인 국정운영 방침은 정치적 계산




국힘이나 한덕수 총리가 이런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한-한' 라인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이유일 것이다. 대통령 유고 사태는 곧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는 것이며, 이재명 대표의 2심 결과 등이 나올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자는 계산으로 읽힌다. 특정 정파의 추측과 이해관계에 맞춰 국가 권력체계를 손 대는 것은 국기문란이다. 비상사태일수록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야 또 다른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질서있는 퇴진" 역시 말 잔치에 불과하다. 마치 차분하게 국가시스템이 회복되고 뭔가가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뉘앙스를 주지만, 법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얘기다. 무엇이 질서이며,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말이 좋아 일임이지 무책임한 방책이다. 대한민국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탄핵안처리 무산 이후 내란죄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 특수본은 8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내란혐의로 긴급체포한데 이어 윤 대통령을 내란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긴급체포후 48시간이내 구속영장 청구여부-구속기간 20일이내 기소여부'가 수사 원칙이니 빠르면 연내로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현직 대통령도 내란과 외환죄의 경우는 소추 대상이다.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마당에 국힘이 탄핵안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사는 탄핵안 통과여부에 관계없이 진행된다. 판사 출신의 이 모 변호사는 “이러저러한 절차를 거치느라 늦어진다 해도 새해 1월에는 윤에 대한 직접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아마도 비상계엄이 내란 기수냐 미수냐 정도만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내란혐의의 증거가 많다는 얘기다.




법 앞에 만민 평등…누구나 '밥값'을 내야 한다


탄핵안 처리가 무산된 7일 국회 앞에서의 느낌 두 가지로 글을 맺는다. 밥을 먹었으면 누구나 밥값을 내야 한다. 지금은 윤 대통령의 '밥값 계산'이 최주요 본질이자 최우선 사항이다. 사법부에서 내란이 최종적으로 인정된다면 역사 법정은 물론이고 현실 법정에서 그가 치러야 할 댓가는 혹독할 것이다. 내란죄는 최중형으로 다스린다. 전두환-노태우가 내란으로 처벌받은 전직 대통령들이다.


또 하나. 계엄이라는 초대형 폭탄이 여타 사안을 무화시키거나, 홍수에 둑 터져 다 휩쓸고 가버리듯 지나갈 수는 없다는 것.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현재 여러 건의 재판이 진행중인데, 최종 판결 형량에 따라 밥값을 계산하게 될 수도 있다. 계엄사태로 민심과 정국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밥값을 깎아주거나 안받는 일이 생길 만큼 사법부가 정치적이거나 비논리적이지는 않겠지만, 만일 그런 기미나 냄새가 난다면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넓디넓은 한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10시간 동안 맞으며 윤석열 탄핵과 내란수괴구속을 외친 수 십만 시민이 그건 대충 넘어가줄까. 8년 전 박근혜탄핵 때 이미 공정과 상식, 주권재민을 관철시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은 국민이다. 민주당과 이 대표도 윤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자신들에 대한 사랑과 지지라고 직역할만큼 단순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촛불정부 어쩌다가 윤같은 자가 집권하게 만들었는가?" 토로


“법 앞에 만인은 동등하다"는, 이제는 다시 말하는 게 짜증날 정도로 상식적인 이 말이 더 이상 강조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시민들의 줄기찬 요구다. A는 A이고, B는 B다. 이게 상식이고 법률이다.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해야 하는 한, 이 나라는 여전히 야만이다. 야만이면서 선진을 운운하는 건 간단히 말해 사기다. 국회 앞에서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시민과 몇 마디 나눴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도대체 민주당과 문재인이 촛불정부를 어떻게 운영했기에 윤석열이 같은 자가 집권해서 이렇게 분탕질을 하고 이 난리를 만드는지 억장이 무너진다"고. 상식과 원칙에 반하는 모든 정치적 계산이나 시도는 '시민에 대한 모반'이라는 것을 칼바람 속 시민들은 웅변하고 있었다.


모두가 놀란 국회앞 집회참가자 연령대와 시위문화


또 하나 놀란 건 집회 참가자 규모가 아니라 연령대였다. 2030으로 보이는 사람이 열에 최소한 서넛, 40대 이하로 보이는 사람들이 60%를 훌쩍 넘겼다. 들고 있는 “조기퇴진" “즉각탄핵" 손팻말이 아니었으면 주말을 맞은 서울 성수동이나 홍대앞, 대학로로 착각할 정도였다. 시위문화도 8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촛불은 여전했지만, 형형색색의 아이돌그룹 응원봉이나 형광봉도 많았고, K팝신곡이 80년대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짱짱하게 울려퍼졌다. 모든 연령층의 국민이 한 마음으로 모여 공동체의 기본을 지키자고 다짐하는 국회 앞에서 희망을 봤다. '너희 진영이 이 난리를 쳤으니 이제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우리 당이고 내 차례'라고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정치꾼이 있다면 자성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은 '아닌 것은 아니다'는 것을, '민주주의와 주권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흥겹게 웅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상은, 역사는, 장애물을 치우고 앞으로 간다. 윤석열의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은 시민들을 비상하게 깨웠고,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원칙 앞에 결연히 집결시켰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시민들과 헌법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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