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업 26.7% 영향…연간 6.7원 추가부담
대기업 연 361만원·중소기업 연 20만원 증가
재계 “기업 당기순이익 대비 14.7% 수준 부담”
대법원이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면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는 기업은 전체의 26.7%에 달하며, 연간 6조7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근로자의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에 따라 조건부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2013년 '특정 시점의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던 것을 11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통상임금이 늘어나면 기업의 부담은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 계산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퇴직금 산정 기준인 평균임금에도 영향을 미쳐 퇴직금도 함께 늘어난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는 최대 3년까지 소급 적용이 가능해 해당 기업들의 당기순이익 대비 44.2%에 달하는 규모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통상임금 판례 변경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는 연 361만6000원이 증가하는 반면, 29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는 연 20만8000원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전체 임금 증가액의 47.7%(약 3조2391억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5.1%인 대기업 근로자에게 집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재계는 법적 안정성 훼손도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형성된 통상임금 판단기준인 '재직자 지급원칙'을 뒤집는 이번 판결로 산업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업들이 11년간 신뢰하고 따라온 법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한 경과조치를 마련했다. 새로운 법리는 이날 이후 산정되는 통상임금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다만 동일한 쟁점으로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이번 법리가 소급 적용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임금의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본질인 소정 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기업들은 임금체계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정기상여금을 나누어 일부는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일부는 '고정성이 없는 성과급'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한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가 함께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기업들의 임금체계 개편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한 것"이라면서도 “기업들이 판결 취지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려 한다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