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정치평론가 /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급기야 80년대 국가폭력의 상징인 '백골단'이 내란 국면에 재등장했다. 작년 12.3 밤 계엄선포만큼 충격적이었다. 백골단은 이승만정부 시절 정치깡패집단이 시작이다. 1980~1990년대에는 시위 학생과 시민을 진압하는 경찰 특수부대를 일컬었다. 청카바(블루진)에 무릎보호대와 흰색 헬멧을 착용해 백골단으로 불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민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행, 공포와 살상의 대명사였다. 명지대생 강경대, 성대 김귀정, 연세대 노수석 사망사건, 한진중공업 박창수노조위원장 시신탈취사건 등 무수하다. 신군부독재정권의 탄압과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다. 그 백골단이 2025년 1월 현직 대통령 내란사건 와중에 재등장,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광기의 시대로, 파시즘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비칠 수 밖에 없어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들이 국회에 설 수 있게 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은 80년대 학창시절 백골단을 직접 봤을 것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 터. 그런데 백골단 자처자들을 국회에 세웠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내란옹호 아닌가.
민주당 등 야권은 지난 총선 대승 이후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다른 탄핵안은 수 없이 잘도 내던데, 이런 민주주의파괴자는 왜 즉각 징치하지 않는가. 김 의원같은 사람이 어쩌다 국무위원이었다면 수십 번 탄핵당했을 것이다. 김 의원 등의 해악이 기탄핵 인사들 못잖다. 제명함으로써 국회 정기 바로 잡는 게 마땅하다. (김 의원은 백골단 국회 인도 뿐만 아니라 해괴망측한 한국어로 국민을 우롱했다. '끝나고 나서 철회하는' 기자회견도 있는가. 한국어를 어디서 어떻게 배웠길래 이따위 말장난을 하는가.)
민주주의 유린자들을 방치하는 거, 꼬박 밤 새면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는 '은박요정'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민주당 등은 저 유린자들 놔두면서 뭘 믿어달라는 건가. 제명 요구는 탄핵국면 논점 일탈이 아니다. 내란자 탄핵-처벌과 동시에, 반역의 무리들도 징치해야 내란이 제대로 정리된다는 건 상식이다.
백골단을 보며 지난 5일 서울 한남동과 무안공항에서 전해진 사진 몇 장이 떠오른다. 동지섣달 긴긴 밤 철야집회 중 눈 뒤집어쓰면서도 내란주모혐의자에게 “체포영장에 응하라"고 외치는 '은박요정', 등불을 들고 집회시민들을 수도회로 안내하는 수사(修士), 항공기참사 유족들이 시신 인수 후 무안공항을 떠나며 공무원과 항공사직원에게 “도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시신을 빨리 수습할 수 있었다"며 허리숙여 절하는 사진.
은박요정과 수사를 보며 사람들은 숭고 뭉클 경외…같은 단어로 SNS를 채웠다. 필자도 먹먹해지며 그저 눈물만 났다. 미안하고 창피해서, 고마워서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뉘라서 그들을 막으랴, 누가 그 앞을 막아서랴, 막은들 그들이 막히겠는가.
무안공항. 지금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사람들이 수고해준 사람들(수고한 것 분명히 맞지만 직무상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기도 하다)에게 예의갖춰 정중히 절 한다. 절 받은 이들도 허리숙여 답례한다. 일부는 운다.
밤새 은박비닐로 추위 참으며 나라의 주인됨을 보여주거나, 슬픔과 피눈물을 삼키고 주변의 노고에 감사의 절을 드리는 이 시민들이 '국난'을 몸으로 수습하는 사람들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이렇게 경우 바르고, 이렇게 강인하고, 이렇게 의젓하고, 이렇게 심지 굳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이었다. 단 한 건의 기물파손이나 행패도 없었다. 이런 국민이다. 내란을 수습해야 할 국록자들은 그 사진들 가슴에 새기고 부끄러워하며, 제 할 바를 해야 한다. 여러 재판일정과 머잖아 치를 것으로 보이는 대선 날짜를 생각하며 계산기 두드려댄다면, 그 또한 저 위대하고 성숙한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배반은 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