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후판 생산량 8.2%·내수 판매 10.7% 줄어
조선업계 일감 늘었는데 국산 후판 수요는 줄어
후판 가격 10~20만원 차이…국내 협상 지지부진
지난해부터 국내 조선업계의 일감이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후판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 철강사가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후판을 생산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탓이다.
중국산 저가 후판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이 해를 넘기는 등 장기간 진행되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에서는 이대로 중국산 후판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안방을 뺏기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국내 후판 제조 3사의 지난해 11월 후판 생산량은 71만3000t(톤)으로 2023년 11월 77만7000t 대비 8.2%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내수 판매량이 줄어든 결과다. 지난해 11월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47만8000t으로 2023년 11월 53만5000t 대비 10.7%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 조선업계가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일감이 크게 늘었기에 국산 후판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야 했지만 중국산 후판 수입이 대폭 늘어나면서 시장을 뺏겼다.
실제 중국산 후판 수입이 크게 늘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지난해 상반기 68만8000t으로 2023년 상반기보다 12% 늘었다. 아직 지난해 전체 수입 규모 통계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나 철강업계에서는 2023년 112만t을 가뿐히 넘어서 120만t을 돌파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90만원 초중반 가량인 국산 후판 가격보다 중국산 후판 가격이 10만~20만원 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사는 중국산 후판에 맞춰 가격을 인하하게 되면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중국산 후판의 시장 공략을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산 후판의 가격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조선업계와 철강업계는 지난해 9월부터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지난해 상반기 협상에서 후판 가격을 90만원 후반 수준에서 90만원 초중반으로 인하한 만큼 이번에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업계에서는 후판이 선박 원가의 약 2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쉽게 인상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다. 국내 조선사의 수익성이 크게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 입장이 이 같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국 협상이 해를 넘겼다. 지난해 3분기까지 조선사가 흑자를 기록했고 철강사는 모두 적자를 기록한 만큼 평소였으면 후판 가격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산 후판이 크게 늘어나면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국내 조선사 입장에서는 훨씬 저렴한 중국산 후판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국산 후판 가격 인상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변수는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 문제로 추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7월 중국산 후판으로 인한 피해를 지적하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반덤핑(AD) 제소를 제기했다. 이에 무역위는 지난해 10월 예비조사에 본격 착수한 결과 오는 2월 관세 부과 여부를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다만 예비 조사 기간이 기존 3개월에서 2개월 더 늘어나 관세 부과 결정 역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혹여 중국산 후판이 문제없다는 판정을 받게 되면 국내 철강사가 크게 불리한 위치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완전히 안방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 반덤핑 제소, 고환율 등의 변수가 많아 후판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중국산 저가 후판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면 완전히 국내 시장을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