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지분상속·지배구조 동시 추진해야···순환출자 해소 ‘골머리’
정기선, 배당 등 통해 증여세 재원 마련 필요···‘리더십 입증’은 숙제
정지선은 승계 작업 마무리···HDC현산·현대·KCC 등은 아직 ‘2세 경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
범현대가(家) 주요 기업들이 '3세 경영' 시대를 연 가운데 지분 승계 방식을 두고는 각각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은 '1인 체제'를 구축했음에도 주력사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눈길을 끈다.
정의선 회장은 이미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주력사 지분 증여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정기선 회장은 지주사 지분만 증여받으면 되지만 이를 위한 세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취임 5주년을 넘긴 정의선 회장은 기존 사업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신사업을 효율적으로 잘 발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자동차·기아가 글로벌 판매 '빅3'에 오른데다 친환경차,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의선 회장 리더십이 돋보이고 있지만 그룹 지배구조는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대기업 중 유일하게 아직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상태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돌아가는 고리가 핵심이다. 현대차→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고리와 현대글로비스 등이 포함된 작은 순환출자들도 있다.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동시에 주력사 지분 증여까지 받아야 한다. 정의선 회장은 주력사인 현대차(2.67%), 현대모비스(0.32%), 기아(1.78%)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7.29%, 현대차 5.44%, 현대제철 11.81% 등을 보유 중이다.
정의선 회장은 대신 다양한 비주력사를 통해 '실탄'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글로비스(19.9%), 현대엔지니어링(11.7%), 현대오토에버(7.3%) 등 지분을 다수 들고 있다. 특히 시가총액 12조원대인 현대글로비스는 그룹의 미래 성장산업에 적극 참여하며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결국 주력사 분할 및 합병 작업을 거치며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낼 것으로 본다. 현대차 지분 21.86%를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를 정의선 회장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또는 현대건설과 합병, 현대오토에버 지분 매각 등을 추진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 사업·투자회사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했으나 시장 반대로 무산됐었다. 당시에는 분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이 공정하게 책정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었다.
최근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정기선 회장은 지주사인 HD현대 지분 확대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태다. 현재 지분율을 6.12%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몫(26.6%)을 증여받으면 경영권 확보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기선 회장 등 특수관계인은 HD현대 지분 37.19%를 확보 중이다. 자사주(10.54%)와 국민연금공단(7.47%)을 제외하면 마땅한 주요주주도 없다.
대산 정기선 회장은 '실탄' 역할을 해줄 주식 재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걱정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기선 회장이 향후 HD현대 배당금 등 현금을 확보해 증여세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HD현대 시가총액은 12조원 수준이다. 정몽준 이사장 재산 전액을 증여받기 위해서는 최대 1조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HD현대가 30여년간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번에 끝냈다는 점도 정기선 회장 입장에서는 부담요인이다. 앞서 권오갑 명예회장 등이 그룹 체질을 개선하고 조선·정유·건설기계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만큼 일각에서 총수 일가 '세습 경영'에 대한 거부감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선 회장은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 대표와 HD현대사이트솔루션 공동 대표도 역임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추진과 인공지능(AI) 등 조선 사업 고도화 여부 등이 당장 눈앞에 숙제로 꼽힌다.
범현대가에서 3세 경영 체제를 온전히 구축한 곳으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있다.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 지분을 각각 39.67%, 29.14% 들고 경영 일선에서 활동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정몽규 회장), KCC(정몽진 회장), 현대그룹(현정은 회장) 등은 아직 2세 경영인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HDC현산의 경우 세 아들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해나가며 중장기적인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KCC에서는 정몽진 회장 장녀인 정재림 KCC그룹 경영전략부문장(상무)이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장녀 정지이 전무는 현대무벡스에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