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지속적 원전 수출의 성공 조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1.23 10:58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청색을 뜻하는'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를 합하여 '청사(靑蛇)의 해'라고 한다. '다산·재물·치유'를 상징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을사년이라면 우선 120년 전 일제가 강제로 저지른 을사늑약(勒約)이 먼저 생각난다. 그때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 구속-기소에다 무주공항 참사까지 겹쳐 온 나라는 어수선하다. 이러니 우리 사회공동체의 존재 이유인 국리민복 증강 기반이 무너지는 듯하다. 원화 환율은 급변하고 소비 심리와 기업 체감 경기는 코로나 사태 이후 최악이다. 이 모두가 지나고 보면 허망하게 끝날 정쟁(政爭)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망라한 정치권 탓이 가장 크단다. 이런 정치권의 피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우리 정치 불확실성은 경제사회 시스템에 추가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AP통신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보고 있다. 올해 잠재성장의 상당 부분(년 0.2%p)이 훼손될 것 같다. 정치권 관련 '이슈'에 관여를 꺼리는 우리 재계(대한상공회의소 등)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에 따른 관세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AI의 빠른 기술적 변화 등을 걱정하고 있다. 이에 2차 대전 이후의 호혜적 다자(多者) 협력 체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1) 다양한 해외 투자와 국제연대, 2) 소프트파워 등 대체 성장 모델 모색, 3) 해외 이민자 유입(500만 명 수준)을 통한 인구절벽 극복 등이 필요하단다. 이 밖에 에너지 조달과 관련 대책으로는; 97% 에너지 수입 의존국인 우리는 AI체재 유지-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등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식 전력체계에서 분산 전원 체재로의 일 부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암울한 여건에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총사업비 20조 원대 '체코'원전 '두코바니' 사업의 최종계약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한전과 그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지난 1월17일자로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종료하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그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려는 최신 한국형 원전 APR1400 모델이 자사의 원천 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며 한수원의 독자적인 수출에 제동을 걸어왔다. 반면 우리는 APR1400의 국산화에 성공으로 독자 수출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왔다. 그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분쟁은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에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은 '수백억 달러 상당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최고 수준의 비확산 기준을 준수할 수 있는 매우 경쟁력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그간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원전 시장장악 가능성을 우려해온 미국 서방권은 큰 전략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번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 간 협상 결과는 관련 당사자들의 유-불리 여부는 결국 검증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불리한 내용이 많을 수 있다는 의혹이 일부 계층에서 표출되고 있다. 당사자들 간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아직 그 세부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유럽 원전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전담하고, 우리 기업들은 중동·동남아 지역진출을 담당할 것이란다. 오는 3월이 시한인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최종계약을 앞둔 한국 측으로서는 국내 정치여건 혼돈의 악영향이 겹친 상황에서 한-미 관련자 분쟁 해결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었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없고 협상 여건마저 약화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보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원전 사업 경쟁력은 지난 50년간 정부 지원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전체 발전량의 40% 수준을 원전에 우선 배정했다. 기기/부품 생산의 전 주기적 구축 지원도 있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비교적 충분했고 미국 스리마일, 일본 후쿠시마 등 원전사고에 따른 악영향도 차단됐다. 이에 따라 세계 수준의 경제적 기기조립 및 시공능력(On Time On Budget) 확보가 가능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바로 그 산물이다. 건설단가(㎾당 1,500달러 수준)는 중국보다도 낮고 선진 경쟁국들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장기 특혜 성장은 항상 비효율을 동반한다. 원전폐기물 처리와 사고 복구 비용, 품질관리 미흡과 전력 시스템 왜곡 등 모든 외부효과를 반영하면 원전의 경제성이 당연히 저하된다. 사실 지금 세계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이 신재생이지만, 우리의 경우 일사 조건 등 자연환경과 토지 확보, 설비 수입 비용 등에서 불리한 점이 많아 신재생 주도 시대가 세계 추세에 비해 늦을 것 같다. 그래서 특정 발전원의 압도적 우세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탈원전 논란이 원숙한 에너지환경정책으로 전환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원전 업계는 무조건적 원전 수출 지원만을 요구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로 오해받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 경수로기술의 경제성 확보는 길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등에서 안전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춘 소형-모듈형 원자로 실용화가 급진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저성장-분산전력 시장에 적합하고 신재생과의 공생도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는 원전 수출에 필수적인 금융조달 능력이 부족하다. 결정적 약점이다. UAE 원전 수출의 경우 지급보증능력 부족으로 최종계약이 5년쯤 지연됐다. 우리 대신 UAE 재무부가 자국 원전회사에 지급 보증을 했다. 우리는 이득 감소를 수용했다. 예컨대 기대 투자수익률이 16%에서 10.5%로 줄었다는 분석(최기련 2018)결과도 있다. 환율 변동, 안전기준 변화 등으로 원전 수출 위험의 가변성이 커질 수 있다. '남지 않는' 원전 수출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 금융조달과 미래기술 확보가 가능한 경우에만 원전 수출을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중국에 대응해 우리 원전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 능력과 미래기술 확보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장쇠퇴기에 접어든 기존 원전의 수출 이득 감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새로운 이득 창출 전략 도입이 불가피하다. 원전 수출은 항상 '남는 장사'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이득 창출 시스템 없이는 대폭적인 원전 수출 지원은 불가능하다. 관련 경제주체들의 미래지향적 개혁조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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