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지연된 주총, 긴장감 속 극적 마무리
최윤범 회장의 승부수... SMC 카드로 승기 잡아
MBK, SMC 통한 영풍 의결권 제한, 법적 공방 예고
올해 최대 주주총회로 꼽혔던 고려아연의 주주총회가 장장 13시간 반동안 진행된 끝에 막을 내렸다. 역전의, 역전의 역전을 거듭한 끝에 현 경영진이 원하는 대부분의 안건이 통과됐다. 다만, 최대주주인 MBK·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의 갈등의 골이 더욱 심화되며 향후 주총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23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그랜트하얏트서울 그랜드볼룸에서는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가 개최됐다. 총회장에는 개최 전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총회장 앞에는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기업사냥꾼 MBK OUT' 피켓을 들며 MBK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주주총회 진행도 지체됐다. 당초 오전 9시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주총은 중복 위임장 검토 과정으로 지체돼 약 5시간 뒤인 1시 50분에 개최됐다. 박기덕 대표이사가 의장을 맡았고, 바로 개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출석 주식수 발표부터 삐걱됐다. 출석 주식수 집계가 100%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총을 진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이지 않은 진행이다 보니 양 측은 서로 으르렁거렸다. 논란 끝에 연회됐고 3시에야 출석 주식수를 발표하며 비로소 진행됐다.
안건 상정에 앞서 사회자가 “자사주와 상호주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말하자 장내는 더욱 고요해졌다. 결과가 사실상 예견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최윤범 회장이 상당히 유리해졌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풍의 대리인인 이성훈 변호사는 “강도를 당한 기분"이라며 “(고려아연의 의결권 제한은) 주주와 자본시장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 주주는 “불만이 있으면 주주총회에서 따지지 말고 따로 진행하라"고 되받아쳤다.
김광일 MBK부회장은 “50% 주주의 의사를 상당부분 날리는 이사회 의장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려아연 담당 변호사는 의결권 제한과 관련해 “상법 외국법인 조항은 국내 활동하는 외국 법인을 규제 감독할 때 적용되는 조문"이라면서 “그 이외의 조문에 대해 한국 회사만 적용되는건 아니기에 상호주 제한은 외국법인도 적용된다"고 반박했다.
◇집중투표제 가결, 다음 주총부터 집중투표제 도입
영풍 측 변호사인 이성훈 KL파트너스 대표는 '주주총회 연기의 건'을 추가하려 했다. 하지만 관련 안건 역시 상호주인 영풍의 지분은 행사가 제한된다는고 박기덕 대표가 알리자, 이성훈 변호사는 추가 안건제기를 철회했다.
이어 1-1호 의안인 집중투표제에 관한 정관 변경의 건이 상정됐다. 집중투표제는 임총 이전 가장 주목받는 안건이었다. 특별 결의 사항이다 보니 발행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과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3%룰'도 적용, 주주 1명당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인정됐다. 최 회장 측 34.24%(의결권 기준 39%), MBK 연합 40.97%(의결권 기준 46.7%)인 현재 지분율 구도와 달리 이 안건에서는 최 회장 측은 58% 의결권을 인정받았다. 아울러 국민연금도 집중투표제를 찬성했기에 최 회장에게 승산이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오랜 시간 동안 집계한 끝에 표결 결과가 발표됐다. 출석 주식수의 76.5%가 찬성하며 집중투표제는 가결됐다. 영풍의 의결권 제한에 결정적이었다.
◇영풍 의결권 제한 효과 최 회장 측 이사 선임
다음으로 1-2호인 이사 수 상한에 대한 표결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19인 상한은 가결됐다. 의결권 자문사를 포함해 양 측 모두 동의하는터라 손쉬운 통과가 예상됐다.
이후 나머지 정관변경의 건을 발표했다. △액면분할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의 건은 예상대로 가결됐다. 하지만 소수주주 보호 및 집행임원제도는 부결됐다.
이후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이사 선임의 건 결과는 밤 10시가 넘어서 발표됐다. 표결 이후 집계까지 4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이사 선임의 건을 두고 사전부터 양측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21일 법원이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임시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MBK가 먼저 웃었다. 집중투표제로 인해 경영권을 장악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지분율 싸움은 유리하기에 MBK의 승산은 크게 높아졌다.
22일에는 최윤범 회장이 반격했다.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해 영풍의 의결권을 무력화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SMC의 지분 취득으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을 건 것이다.
결과는 최윤범 회장의 승리였다. 상호주로 영풍 지분이 제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최 회장 측이 후보로 올린 △이상훈 △이형규 △김경원 △James Andrew Murphy △정다미 △이재용 △최재식 후보가 이사로 선임됐다. MBK측이 제안한 이사들은 모두 선임되지 않았다. 결과를 예상됐던 김광일 MBK부회장 등은 상당한 유감을 표현하면서 오후 7시 정도에 주총장을 떠났다.
이로써 13시간 반동안 이어진 주주총회가 마무리됐다.
◇주총 이후 대형 법적분쟁 예고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이 주총에서 법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MBK측은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실시된 영풍의 의결권 제한 조치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SMC를 활용한 영풍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 MBK가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MBK는 SMC를 통한 영풍의 의결권 제한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SMC가 호주에 설립된 외국 유한회사라는 점을 들어 상법 제369조 제3항 적용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MBK 측은 상법 제618조를 근거로 들었다. 이 조항은 외국회사에 적용되는 상법 규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제369조 제3항은 제외돼 있다는 설명이다. 또 판례에서도 준용규정이 없는 조항의 경우 외국회사에 대한 상법규정 적용을 부정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측도 스스로 '최후의 수단'이라고 부르는, 상호주 주장도 눈 앞에 닥친 임시주총에서 표대결에 패배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자 탈법 행위"라면서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이성훈 변호사는 “주요 주주인 영풍의 의결권을 막은 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