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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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50대 이상 세대는 어린시절 어머니나 할머니가 시장에 가실 때 “쌀 팔러 가"라고 하시고는 고등어, 두부 등 저녁 찬거리만 들고 오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쌀은 팔지도 않은채 쌀 팔러 가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오랜 기간 쌀이 우리 경제의 상품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 쌀을 들고 가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돈을 들고 찬거리를 사러 가실 때에도 “쌀 팔러"가신다는 언어습관이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당시 쌀은 자체로도 소비 가능한 상품임과 동시에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현대 경제가 크게 성정하고 화페 및 금융시스템이 정교해짐에 따라 쌀과 같은 상품은 화폐기능을 잃게 되고, 대신 사용가치는 없지만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는 명목화폐만 남게 되었다.
신뢰를 바탕으로한 명목화폐는 현대 경제시스템의 근간이다. 상품화폐야 생산된 상품이 있어야 하지만 명목화폐는 발행만 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며, 현금 외에도 전자 신호로만 존재하는 형태라도 발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명목화폐는 국가가 가치를 보증해야하고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가치가 보존될 수 있다. 이렇게 명목화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 당시에는 반드시 발행량에 준하는 담보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금이 담보로 활용되었으나, 금의 보유량을 늘리는 것보다 경제의 성장속도가 더욱 빠르게 되자 국가들은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화폐를 발행한 국가들은 그만큼의 국채를 발행해야하며, 이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시장에서 돈을 끌어다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미연준에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경우 새로운 화폐가 발행될 수 있다. 이에 세계의 유동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달러화도 국제금융 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 금리와 미정부채 수요, 글로벌 정세 등이 달러화 증감에 중요한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연관되게 되었다.
글로벌 무역뿐만 아니라 원유결제, 외환결제 등이 달러화로 이루어지며 미국 외에 전세계 주요 국가들도 달러화를 미정부채 등 달러자산으로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이라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얽혀있는 현재, 달러화에 무한한 신뢰를 보낼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미정부채가 수십년간 축적되고 미국의 재정적자, 무역적자가 깊어감에 따라 달러화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지 오래다. 이에 복잡한 국제정세로 일부 국가들은 미정부채 보유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달러화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달러를 대체한다는 금에 대해 수요가 증대되어 금 한 돈 가격이 50만원에 육박하기에 이르렀고,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어 달러화 위기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에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화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은 매우 큰 권력이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지도자는 화폐시스템부터 손을 봤으며, 명목화폐를 찍어내자마자 발생하는 주조차익은 국가권력을 확장하는 재원이 되었다. 흥선대원군도 기존 화폐에 대한 일당백이라는 당백전을 발행하여 경복궁을 증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화폐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면 결국 권력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역시 흥선대원군 이후 구한말의 상황이 이를 입증해준다. 제 아무리 슈퍼파워라는 미국도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잃고 달러화 기축통화 시스템이 흔들리게 되면 국제정세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지위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미국도 이를 잘 알기에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과 같이 미정부채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이벤트에 기민하게 대응해왔고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에는 새로운 담보를 확보한 듯하다. 트럼프 미대통령은 달러패권을 위협한다던 암호화폐를 오히려 역으로 활용하여 달러화의 지위를 견고히 하고자 한다. 이론적으로 비교적 음지에서 통용되던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스테이블 코인의 준비자산을 미정부채로 규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스테이블 코인은 갖은 이슈에도 불구하고 그 편리성과 활용 가능성으로 인하여 이미 발행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국내 소규모 무역상들도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금을 결제받고 있다고 한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양성화 및 제도화로 사용량이 증가할 경우 미국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대되고 이는 미정부채 금리를 낮추는 동시에 미국 재정적자 및 달러화 신뢰도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에 들어 이제껏 달러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암호화폐에 대한 시각을 긍정적으로 가져가는 데에는 달러와 암호화폐 사이에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도 미국에 움직임을 주시하고 암호화폐 시장을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금리문제를 한은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채 수요 저변을 확대하여 중장기 금리가 하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