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 철산주공·신반포4지구 재건축 조합과 갈등 빚어
업계 다수 사례로 부실 계약서·확정지분제 허점 등 지적
국토부, 갈등 방지 위해 표준계약 관련 개정안 행정 예고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도시재정비 사업을 둘러 싸고 건설사와 조합간 공사비 갈등이 심각하다. 물가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라지만, 상호간 책임과 권한이 불분명하게 규정된 부실 계약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도 개선을 통해 표준 계약서의 보완과 계약 주체들의 사전 준비 및 협의 강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12일 개발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개발 조합 등이 시공 계약을 맺은 대형 건설사들과 소송을 벌이면서 입주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 GS건설이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철산주공 8·9단지 재건축 조합에 설계 변경과 원자잿값 폭등 등을 이유로 공사비 1032억원을 추가 요구해 조합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또 GS건설은 신반포4지구 재건축 조합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합이 공사비 4859억원 증액을 거절하자 금융비용과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2571억원에 대해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6월으로 예정됐던 입주가 머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난 건설사의 유치권 행사로 조합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다른 사례도 많다. 지난해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간 사이에 공사비 갈등이 일어나 입주 예정일을 불과 한 달 남긴 채 공사가 중단됐으나 구청의 중재로 봉합됐다.
또 최근 한화 건설부문이 시공한 제주의 '한화포레나 제주에듀시티'는 미분양이 속출한 데다, 발코니 확장 등 계약과 설계변경 건으로 시공사 하이펙스와 법적 분쟁이 일어나며 입주가 무기한 연기됐다.
업계는 건설사와 시행사, 조합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쟁이 불명확한 계약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정비 사업은 변수가 많은 현장 특성으로 인해 설계 변경 시 추가 비용 산출 방식 명시, 공사비 조정 기준 등 계약 조항이 명확하게 작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건설사들은 모호한 계약 조항과 조합 측의 전문성·역량 부족, 다수의 조합원으로 구성돼 단일 대오로 장기적인 법적 투쟁이 불리한 점 등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합이 땅을 출자하고 건설사가 정해진 예산 내에서 건축 비용을 책임지는 '확정지분제' 방식의 계약도 문제다. 건설, 분양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이 얼마인지 조합 측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분쟁의 소지가 되고 있다. 또 설계, 마감재 등을 시공사 측이 임의로 바꾼 후 추가 발생한 비용을 조합과 사전 조율·합의없이 사후 청구하는 점도 불씨가 되고 있다.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유명무실해지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들어 재개발 공사 계약에선 물가 변동에 따른 추가 비용을 시공사 측이 부담하는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물적·인적 토대가 약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조합이 대형건설사들의 물량 공세를 감당할 수 없어 소송에서 뒤로 물러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조합 관계자는 “이사 일정이 정해져 있는 조합원들 입장에선 건설사들이 요구하는 액수의 일정 부분을 지불해주고 하루라도 빨리 입주하는게 이득일 수 있다"며 “이해관계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의견 조율이 쉽지 않고 로비에 취약하다는 점도 조합이 건설사들의 소송에서 쉽게 물러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기는 했다. 지난 11일 정비사업 입찰제안서에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공사비 변동 가능성 △마감자재 규격·성능 및 재질 △설계개요, 세대구성 사업개요를 명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입찰 전 건설사의 공사비 인상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마감재나 설계도면 등도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하게 해 갈등을 줄인다는 취지다. 국토부는 규제심사 등을 거쳐 이르면 오는 4월부터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건설업에는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는 요인들로 인해 건설 원가가 급등했다"며 “표준계약서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문제가 또 언제 터질 지 모르니 갈등 사례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