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한 푼 없이 이뤄진 M&A…자산 유출과 상장폐지의 막장 시나리오
조건부 수표의 함정…회계법인도 인정하지 않은 비정상 거래
김선기 KIB플러그에너지(이하 KIB) 대표와 그 측근들은 조건부 수표를 활용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즈미디어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른바 '무자본 M&A'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이즈미디어의 주요 자산은 더코어텍 그룹에 넘어갔고, 회사는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이즈미디어와 자이셀을 무자본 M&A한 KIB 역시 투자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20일 이즈미디어의 회생절차가 개시됐다. 이는 전월 더코어텍그룹으로 합병된 코어옵틱스가 채권자의 지위에서 이즈미디어를 회생신청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다. 그런데 코어옵틱스는 과거 이즈CCM이었고, 이즈미디어의 계열사다.
이즈미디어의 계열사가 모회사에게 채권이 있다고 요구하며 모회사를 회생으로 이끈 것이다. 이즈미디어가 코어옵틱스에 용역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조건부 현금 지급', 계약 기능 형해화

▲이즈미디어 관련 M&A 요약도.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OTC마켓 등
이 아이러니한 채권채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1년으로 시계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즈미디어는 검사장비 제조업체다. 이들은 2021년 신사업을 진행한다.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누나인 랜디 저커버그를 앞세워 가상자산, NFT 등 미래 신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주식 시장은 저커버그란 이름이 나오자 환호했고, 2020년 10월 말 5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4만5000원까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듬해 감사의견 '의견 거절'로 거래가 정지됐다.
2022년 11월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다. 어바인아시아다. 여기엔 민 모씨, 노 모씨 등 자이셀 무자본M&A와 관련된 인물들이 이사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수 방식은 한가지만 빼면 통상적이었다. 어바인아시아는 2회차 사모 전환사채(CB)를 인수 후 즉시 전환해 최대주주가 됐고, 곧 이즈미디어 이사회를 장악했다.
문제는 매각 대금 지급 방식이었다. 그들은 외화수표를 교부했는데, 해당 수표에는 상장폐지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반환하기로 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는 자이셀에 출자한 'Monetery Note'([김선기 KIB대표의 무자본 M&A ①] 참조)와 유사하다. 계약이란건 양 당사자에 권리·의무가 부여되는데 조건을 활용해 '대금 지급 의무'를 회피한 것이다.
조건부 수표는 이즈미디어를 여러 방식으로 갉아먹었다. 우선 회사 정상화를 방해했다. 회계법인에서는 조건부 수표를 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건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사용가치 및 교환가치 측면에서 현금으로 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현금으로 계상한 회계처리를 용인할 수 없었다. 외부감사 결과는 당연히 '의견거절'이었다.
또한 이즈미디어의 정상화를 이끌 동인도 없었다. 상폐가 유지된다면 어바인아시아는 현금 유출 없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이즈미디어의 자산을 외부로 유출시키기 시작했다. 이즈미디어의 주력 부문인 CCM부문(현재 코어옵틱스)을 자회사로 분리했고 더코어텍그룹에 매각했다.
이즈미디어는 사실상 해체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수주체들은 되려 이익을 얻었다.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은 사실상 법인격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거래 당사자인 법인에 속한 인물들이 상당히 유사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즈미디어 이사들의 이력을 보면 확인된다. 김선기 KIB 대표의 경우 △이즈미디어 사내이사 △자이셀 대표이사 △코어옵틱스 대표이사 △더코어텍그룹 회장 등을, 베트남계 미국인 민 씨는 △이즈미디어 사내이사 △어바인에셋(어바인아시아 모회사)의 이사 △더코어텍그룹 이사 △자이셀 이사를, 김 모씨는 △이즈미디어 사내이사 △Core SS 이사 △더코어텍 그룹 이사를, 정 모씨는 △이즈미디어 사내이사 △Core SS 이사로 재임했거나 재임 중이다.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OTC 마켓 등
지난해 6월 거듭된 부실화로 인해 이즈미디어는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됐다. 정리매매가 진행되며 최대주주는 넥스플랜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김선기 대표와 그 측근들은 이즈미디어를 다시 한 번 압박했다. 이들은 자회사가 모회사에 용역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를 모회사가 미지급했다는 이유로 이즈미디어를 회생을 신청했다. 그들은 회사를 떠날 때까지 회사의 자산을 끝까지 확보하려한 것이다.
◇KIB플러그에너지, 이즈미디어 '데자뷔' 우려
김선기 KIB 대표는 이즈미디어가 회생에 이르는 과정 곳곳에서 등장한다. 일련의 거래에 김선기 KIB 대표는 대부분 개입됐다. 그러다 보니 그와 그의 측근이 KIB의 경영권을 확보한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영권을 확보할 당시에도 큰 논란이 있었다. 그가 선임될 당시, 법원은 KIB플러그에너지 주주연대가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음에도 주총 의장이었던 허성호 전 대표는 의결권 제한 주식을 모두 포함해 표결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조건부 거래로 인해 이즈미디어는 자금이 유입되지 못했고, 자회사를 매각해 회생에 이르렀다"면서 “KIB는 건전하고 투명한 경영을 기대하며 그를 선임했다고 밝혔지만, 그간의 과정을 봤을 때는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선기 KIB 대표에게 이와 관련해 문의했으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