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법원 판결 후 CEO 제재 경징계로↓
금융 포함 기업 CEO들 사법리스크 ‘여전’
민주당 ‘상법개정안’, 이사 책임 강제 논란
법리적 판단 우선, 투자결정 소극적 우려
“금융사 상품, 금융소비자와 계약 관계”
금융사 CEO에 책임 부여 타당 의견도

▲금융권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돼 금융사고 관련 인적 제재에 대한 근거를 법으로 명시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해외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관련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를 기존 '문책경고'에서 '주의적 경고'로 감경한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기업 CEO를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부터 은행, 금융지주사에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금융사고 발생 시 임직원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진이 법리적 다툼, 소송 가능성 등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기업경영 위축, 기업가치 하락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금융지주사들은 다른 기업 대비 주주환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주주들이 별도로 금융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함영주 회장, DLF 사태 제재 '경징계'로 하향

▲금융감독원.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DLF 사태 당시 하나은행장이었던 함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를 기존 문책경고의 중징계에서 주의적 경고인 경징계로 낮췄다. 금감원이 함 회장에 내린 문책경고의 중징계 처분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7월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함 회장을 포함한 하나은행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조치를 취소했다.
함 회장에 이어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도 금융당국을 상대로 문책경고 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해 모두 승소했다. 금감원이 금융사 CEO에 내린 징계 수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취지다.
그러나 금융사 CEO를 포함한 기업 CEO들은 여전히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갈수록 CEO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 규제안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금융지주, 은행에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돼 금융사고 관련 인적 제재에 대한 근거를 법으로 명시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는 내용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주주를 보호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은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안 추진에 반대했다.
'기업 발전보다 법리적 다툼 우선' 상법개정안 부작용
상법 개정안을 두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섣부른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이사는 주주가 아닌 회사와 계약 관계에 있고 회사에 대한 책임은 곧 주주에 대한 책임으로 간주하는데, 상법 개정안은 주주의 이익을 법적 근거로 명시해 이사의 책임을 강제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막대한 소송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회사 이사진이 어떠한 경영행위를 했을 때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게 상법 개정안의 도입 취지"라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이사들이 기업의 발전과 성장보다는 법리적 다툼을 우선순위에 두고 대규모 투자 등 각종 경영적 판단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진이 법리적 다툼, 소송 가능성 등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기업경영 위축, 기업가치 하락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이사의 의무에 주주보호를 명시한 해외 사례도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부분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규제를 통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어 해외 사례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유럽연합(EU)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통해 유럽 회원국 모두가 지배주주 외에도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때 지배주주의 지분만 인수하는 것도 가능해 소액주주들에게는 큰 손실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상법 개정안의 취지를 담은, 혹은 개정안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법안들은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법을 1대 1로 보는 것은 상당한 오류에 빠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상법개정안 통과시 금융사 영향은 '미미'
게다가 금융사가 판매하는 상품은 금융소비자와 계약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사 CEO에 더욱 엄격하고 무거운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 상품에 대한 신뢰가 한 군데에서 무너지면, 금융 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일정 수준의 규제를 통해 금융소비자와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만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실제 금융지주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금융지주사들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현금배당 등을 통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데다, 증권·카드 등 계열사들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 주주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금융지주사는 지배구조가 탄탄하고, 배당수익률도 좋기 때문에 주주들의 불만이 크지 않다"며 “이로 인해 상법 개정안이나 소송과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