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가격 인상 공식화하며 선제 대응
삼성·하이닉스, 유동적 대응 방침만 밝혀
시장 재편 속 국내 기업 전략 시험대 올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마이크론 사무실 간판. 사진-연합뉴스외신
마이크론이 움직였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가격 인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최근 전방 수요 회복세와 고성능 제품 수요 확산을 이유로, D램을 비롯한 주요 메모리 제품 가격을 전방위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제조사들도 시장 흐름 속에서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기로에 섰다.
마이크론의 선제 움직임…가격 인상 신호탄 쐈다
2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전날 실적 발표에서 “AI 중심의 수요 증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강조했다.
이와 함게 실적 발표 당일 채널 파트너에게 보낸 별도 서신에서는 “글로벌 수요 강세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고객사와의 거래 조건 변경을 통보했다.
DRAM 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과 DDR5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가격 협상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셈이다.
마이크론의 결정은 시장의 전환점이다. D램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낸드플래시 등 타 메모리 품목으로 파급 효과가 이어지고, 전체 반도체 수익성 개선 국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가격 인상은 단순한 계절적 반등이 아닌, 수요자 중심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 질서가 재편되는 신호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출하 경쟁이 아니라 가격 방어가 핵심 전략이 되는 국면"이라며, “업계 전반이 '적과의 동침'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AI 서버, 고성능 GPU, 첨단 데이터센터용 HBM 수요는 올해 내내 강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이미 2025년 HBM 생산 물량이 완판됐다고 밝히며, 2026년 수요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엔비디아, AWS 등 주요 고객사들이 연이어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하반기부터는 HBM 가격 추가 인상도 예고됐다.
이와 같은 고부가 수요 중심의 구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공급사들이 장기 계약이나 전략적 협상 조건을 강화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된 것이다.
신중한 삼성·하이닉스, '신뢰가 먼저' 전략
이제 대한 한국의 반응은 다소 차분하다.
이상락 SK하이닉스 GSM(글로벌 세일즈마케팅)담당 부사장은 이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전날 경쟁사가 채널 파트너에게 보낸 서신을 우리도 봤다"며 “저희는 따로 고객들에게 그런 서신을 보내진 않고, 항상 유동적으로 대응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공식적인 가격 인상 움직임은 아직 없다.
이 같은 태도는 시장 내 리더십을 쥔 두 기업이 성급하게 흐름을 주도하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가격 후행'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시장의 특성상, 고객사와의 장기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고려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업계가 신중함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요의 질적 회복은 일부 부문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PC용 D램, 모바일 D램 등 전통적인 응용처의 수요는 아직 완전한 회복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다.
AI 특수가 전체 시장을 끌어올리고는 있지만, 범용 제품 가격 인상은 수요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가격보다 시장 신뢰와 기술력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신중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수익성 회복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2분기부터 글로벌 고객들과의 가격 재협상 분위기가 본격화되면, 공급자 간 눈치싸움도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선제적 움직임이 기준점이 된다면 후발 주자들에게는 유리한 협상 여건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며 “반대로 시장이 가격 인상을 수용하지 못하면 보수적으로 접근한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더 유연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