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 정기 주주총회서 경영권 방어 성공
MBK·영풍도 이사회 진입…이제부터 불편한 동거

▲2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고려아연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면서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지속된 경영권 분쟁이 우선 일단락됐다. 다만 최 회장 측이 완승을 거둔 것은 아니다.
고려아연 이사회에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진입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결국 경영권을 확보한 최 회장이 분쟁 상대방과 대타협을 진행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 탓에 고려아연의 수익성 악화
30일 재계에 따르면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면서 고려아연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고려아연은 12조52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7235억원으로 2023년 대비 9.64% 늘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서 견조한 영업실적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이익은 1948억원으로 2023년 5334억원 대비 63.48% 줄었다. 이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급증한 차입금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 고려아연은 MBK·영풍 측의 공개매수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차입금을 크게 늘렸다. 2023년 말까지 9259억원 수준이었던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연말 4조9721억원으로 5배 넘게 급증했다.
또한 비철금속 업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의 세부 매출을 살펴보면 아연(30%), 은(29%), 연(18%)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연·연의 단가가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고려아연의 수익성도 개선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고려아연의 존재감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산물이 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중국이 텅스텐,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인듐 등 5개 품목과 관련 기술에 대해 수출 통제를 발표했을 때도 정부는 가장 먼저 고려아연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5개 품목 중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은 모두 안정적인 국내 생산과 공급이 이뤄지고 있으며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이 중 3개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인듐은 인공지능(AI)용 반도체 기판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로, 고려아연은 지난해 92t(톤)을 생산했으며 이는 글로벌 생산량의 8.5%에 해당한다.
◇불편한 동거 2~3년 지속될 수도…싸움보다는 타협 모색할 때
수익성·업황 악화와 공급망에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정기 주총에서 우선적인 경영권의 향방이 결정된 만큼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이 대타협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번 정기 주총에서 이사 수 상한 정관이 도입됐고 그 상한만큼 이사가 새롭게 선임됐기에 단기간에 이사회 구성을 크게 바꾸기가 어려워졌다. 양 측이 2~3년 동안 본안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더라도 이번 정기 주총 결과를 바꿀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 때까지 최대주주는 MBK·영풍 측이지만 최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 내부 구도 역시 양 측 모두에게 편하지 않다. 기존에 장형진 영풍 고문만 홀로 버티던 고려아연 이사회에 이번 정기 주총 결과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 권광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 3명이 새롭게 합류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이사회가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측 5대 1에서 11대 4로 재편됐다. MBK·영풍 측은 이사회 내부에서 운신의 폭이 확대됐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고, 최 회장 측도 반대파가 늘어난 만큼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할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양 측이 격렬하게 여론전과 소송전에 집중한다면 고려아연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양 측이 한 걸음씩 물러나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영권을 수성한 최 회장 측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진단이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1월 임시 주총 직후에 MBK 측에 먼저 화해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MBK·영풍 측이 입장을 돌린다면 극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정기 주총 이후 양 측이 2~3년씩 소송을 진행하면서 불편하게 동거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양 측이 고려아연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씩 타협을 진행해야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