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재계 ‘민간 외교관’ 뛰는데 정치권은 ‘불구경’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4.01 10:58

산업부 여헌우 기자

산업부 여헌우 기자

▲산업부 여헌우 기자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하려 합니다."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철강·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를 발표한 기업인은 손정의 소트프뱅크 회장과 웨이저자 TSMC 회장 뿐이다. 우리나라 '민간 외교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에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을 초청했는데 이 회장이 포함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중국은 조심스럽게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샤오미, BYD 등 현지 대표 기업 리더들과 회동하며 파트너십도 도모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기업인들은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했다. 최태원 회장은 백악관 및 상·하원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대응법을 모색하기 위한 경제단체들의 세미나·강연도 계속 열리고 있다.



민간 외교관이 이처럼 바쁜 것은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 '무역 전쟁'에 휘말릴 위기다. 환율은 치솟고 금융 시장도 불안하다. 각국이 관세 장벽을 세워 수출까지 줄어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직전 전망치보다 0.7% 포인트 내린 1.5%로 잡았다. 일부 해외 경제 분석 기관에서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은 강건너 불구경 중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행정부 외교라인은 사실상 멈춰 섰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 국가' 명단에 포함시킨 사실을 두 달 동안 몰랐을 정도다. 국회는 민생과 경제는 저버린 채 '표심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연초부터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치 논리만 앞세우다 적기를 놓쳤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도 여야는 추경을 흥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게 1995년이다. 30년이 지났다. 우리 기업들은 1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는 어떠한가? 대통령 탄핵 사태라도 빨리 수습되길 바랄 뿐이다.



여헌우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