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윤석열 파면’이 남긴 숙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4.05 11:54
일상으로 돌아간 광화문 광장.

▲일상으로 돌아간 광화문 광장.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경찰 차벽이 철수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로에 차량들이 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강윤 정치평론가

▲이강윤 정치평론가

8년 만이다. 대통령이 또 파면됐다. 사유는 위헌 불법계엄. 군대를 동원해 나라의 정체성을 바꾸려 한 내란이었다. 전 국민이 중계방송을 통해 지켜봤고 파면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파면 결정을 마음 졸이다가 환영해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암담하고 참담했다. 헌법재판소 선고문이 명문이라고들 한다. 동의한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법리 해석이나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갖고 있는 상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넉 달이 걸렸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위치와 과제를 직시하게 한 넉 달이었다. 과제는 상식과 원칙, 합리의 회복이다. 과제가 너무 당연하고도 평범해서, “이미 다 이룬 것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그 상식과 원칙, 합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한 넉 달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게 현 주소다.



헌재 선고 두 시간 후 윤석열 피소추인은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승복도, 사죄도 아니었다. 누구의 무슨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건가? 애매하다. 일부러 애매하게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과는 한국말 깨우친 삼척동자도 의심의 여지없이, 헷갈리지 않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사과다. 다 떠나서, “야권이 못살게 굴며 빌미를 제공했고 대통령으로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해서, 군대를 동원한다? 헌재 선고문이 지적했다시피 주권자에 대한 도전이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였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식의 변화가 없다. 계엄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은 일점일획도 없었다.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보겠다는 뉘앙스마저 읽힌다. 그래서 더 암담하고 참담하다.


아직도 국민이 만만한가…승복도 사죄도 아닌 '윤석열 입장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힘은 철처하고도 무조건적인 사과와 승복을 천명하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자신들 지지자들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헌재결정 승복과 폭력적 대응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게 공동체 속에 존재하려는 정당의 기본 모습이다. 헌재의 파면 선고 순간부로 대선 모드에 돌입했다. 국힘은 윤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내란 옹호/선동에 앞장 선 의원들에 대해 출당 등 징계에 나서야 한다. 그게 사과와 거듭남의 행동표현이다. 사과란 사과받을 국민들이 “됐다, 그만 사과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과 추종세력의 축출 없이, 사과와 선 긋기 없이, 무슨 염치로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소속 대통령이 8년 새 두 번씩이나 파면당했으면서 아직도 주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계엄내란후유증 정리해야


파면 전까지는 '야권'으로 불리운 제 정파도 각종 정치적 식언과 정당 운영의 비민주성, 극단적 지지자들의 훌리건적 언행/편가르기 등에 대해 반성하고 수권 세력의 정책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게 내란 후 치르는 대선의 기본 모습이다. 임기를 조기 강퇴당한 전임자의 후임자를 뽑는 '단순 보궐선거'가 돼서는 안된다. 주권자들이 넉 달 간 거리와 광장에서 외친 것은 내란수괴척결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리셋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파면으로 리셋은 끝났다. 다음 정권은 당연히 나, 우리"라며 전리품 획득자처럼 군다면, 미안하지만 번짓수가 틀렸다. 계엄내란의 후유증 청소는 확실히 하되, 민족정기-국가정기 회복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극단주의자들의 정치보복 트집을 제압할 수 있다. 계엄내란의 한 원인이었던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음모론을 제어해야 한다. 사회의 성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분파성과 적대성의 위험을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도록 지루함을 견디며 끈기있게 대화하고 인식을 모아나가야 한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상식과 합리가 존중받는 풍토, 극단 과격주의자들에게 좌우되지 않는 지적 토대와 의사결정과정 구축이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는 '역사적인 숫자'가 있다. 3‧1, 8‧15, 4‧19, 5‧16, 10‧26, 12‧12, 5‧18, 87년 6월, 4‧16…. 여기에 12‧3이 추가됐다. 12‧3 비상계엄. '역사의 모르스 부호'가 된 숫자들을 열거하고 보니 쿠데타가 세 번이나 된다. (참고 : 물론 이승만 시절에도 계엄이 여러 번 발령됐지만, 전시거나 준사변일 때도 있어 숫자에서는 일단 제외.)


리셋이 필요한 대한민국…상식과 합리 회복 절실


조기 대선에서 어느 정파가 승리하든 새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같은 정치적 내전상태가 완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영 대결의 정점 구간에 장기 교착돼있기 때문이다. 윤석열비상계엄내란을 제대로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수록 상식과 원칙, 합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는 아직 원칙과 상식, 합리가 시대정신이어야 하는 수준이다. 현 상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런 인식에 기초해 양극화해소와, 공교육회생, 저출생극복으로 나아가는 첫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가족들 건강과 취업걱정, 학비걱정, 물가걱정, 노후걱정…들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다행인 걱정인지 뼈저리게 깨달은 기간이었다. 두 번째 파면이다. 같은 문제로 수업료 두 번 내지 말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전 영역에서 확인되는, 아니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통합이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계엄내란이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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