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였다. 헌법재판소가 5대 3으로 갈려 탄핵 선고를 하지 못한다는 우려, 4대 4로 기각되리라는 예상, 모두 빗나갔다. 재판관 8명의 성향은 각기 달랐지만,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해 파면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원일치였다.
돌아보면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재판관들이 진영으로 갈렸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헌재 폐지론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개인적 정치 성향보다 공적 책임과 법리를 우선했고,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행스런 일이다.
사법체계 흔들었던 정치인들 책임 물어야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들이 많이 드러났다. 그 중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가 사법체계에 대한 조롱과 불신이었다. 대한민국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윤석열의 헌법 무시와 아전인수식 법 해석은 심각했다.
법치주의를 제일 중시해야 할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대놓고 법원과 판사를 공격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재판을 지연시키고, '정치 검찰'이란 비판 뒤에 숨어 여러 가지 범죄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은 국민들에게까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다.
헌재의 이번 선고로 가장 첨예했던 불신이 해소됐다고 해서, 모든 걸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흔들었던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논란이 많은 헌재 재판관 임명 제도나, 문재인 정부 시절 졸속한 공수처 입법으로 대통령 수사와 기소에 혼란을 일으킨 사법체계도 세심하게 손봐야 할 것이다.
123일간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아픔 두 번째는 극단적인 사회 분열이다. 헌재 근처와 용산, 광화문 일대는 날마다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등을 지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엔 회복하기 어려워 보이던 극심한 갈등도 다행히 선고 이후엔 잦아들고 있다. 아직 일부 극단층이 현실을 부정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조사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77% 라는 압도적 다수가 “수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동안 불거진 분열과 갈등을 긍정적 참여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 언론에 대한 회의
세 번째로 아픈 부분은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에 대한 깊은 회의다. 정당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삼각대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발목을 잡는 지옥도를 우리는 3년 가까이 지켜봤다.
민주당과 국힘은 내가 잘해서 표를 얻기보다 상대방의 잘못에서 이득을 얻는 '적대적 공생'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관용과 자제, 타협이 없는 양당 대립이 줄탄핵과 줄거부권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이없는 파국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론 같은 가짜뉴스들이 언론자유의 틈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기생했다.
얻은 것도 있었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줄 알았던 젊은이들이 광장 전면으로 나왔다. 계엄령 시행에 소극적이었던 군인들, 그리고 촛불혁명을 '빛의 혁명'으로 이어받은 청년들은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한 MZ세대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청년들의 참여를 좋은 정치 문화로 이어갈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 유튜버나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단물만 빼먹는 가짜뉴스에는 책임을 묻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MZ 세대의 정치 참여는 소득
탄핵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정책이 아니라 정당과 인물에 대한 호감도로 뽑는 미인대회 식 선거제도와 정치체제를 보완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고 뽑았다가 다시 파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아픔을 도약의 기회로 전환할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는 저서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 에서 독재 국가와 무정부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있다고 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지만,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려면 강력한 시민사회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1987년 민주화를 이루고도 계속 고단한 길을 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강한 회복력을 가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동안 동네 식당들은 텅텅 비고 직장인들은 불안감에 일손을 놓았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통과 갈등, 눈물과 환호를 거치며 우리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맬 힘을 얻었다. 최근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제주도 사투리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위로다.

▲신연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