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당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이어지자, 우 의장은 자신의 개헌 주장을 철회했다. 그의 개헌 제안은 타당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1987년 개헌 당시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행 헌법은 그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윤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역대 국회는 모두 개헌 특위를 가동한 바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장애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투표 절차에 있다. 현행법상 개헌 관련 국민투표는 본 투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 투표는 사전 투표까지 실시하고, 개헌 관련 투표만 본 투표 당일에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개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과연 이런 이유에서 개헌에 반대했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되짚어 보면, 개헌론이 주로 부상하는 시기는 정권 말기와 대선 시기다. 이는 거의 예외가 없는 한국 정치의 '비공식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어 온 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개헌론의 등장은 권력, 그리고 세력의 불균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권 말기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권력 말기의 레임덕 현상으로 인한 권력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 시기에도 개헌론이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대개 대선에서 열세에 놓인 쪽에서 주도한다. 레임덕 방지든,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이든, 공통된 점은 개헌이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점이다. 개헌이 이처럼 효과적인 카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블랙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헌 이슈가 부상하면, 다른 모든 정치적 이슈는 그 앞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는 자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신이 설정한 선거 구도도 흐트러지게 된다. 따라서 강세를 보이는 후보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임기 말에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도 개헌론을 꺼내 듦으로써,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나 책임을 일시적으로 무대 뒤로 물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권력 누수 현상을 일부 완화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전략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은, 정권이 제기하는 개헌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나 정권 말기의 야당은 개헌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 정치에서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개헌이 성공하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의 틀 속에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정치인의 출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