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롬 파월 연준의장(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금융시장에서의 '셀 아메리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고조된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퇴진을 압박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성이 더욱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금융시장에서 미 달러 가치, 뉴욕증시 3대 지수 선물, 10년물 미 국채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최근 백악관에서 파월 의장의 해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은 그 문제에 대해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답한 것이 매도세를 부추겼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일부 헤지펀드들은 해싯 위원장 발언 이후 달러 투매에 나섰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날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오후 2시 33분 기준, 달러인덱스 6월 선물은 전장대비 1.15% 하락한 97.989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2022년 3월 이후 최저치다.
같은 시간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전장대비 0.74% 오른 4.359%를 보이고 있다. 채권 가격은 국채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투자자들은 미 국채 투매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증시 3대 지수 선물도 하락세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선물은 -0.81%, S&P 500 선물은 -0.79%, 나스닥100 선물은 -1.04% 등을 기록, 3대 지수 선물이 모두 내리고 있다.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의 크리스토퍼 웡 전략가는 “연준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달러에 대한 믿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되자 또다른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화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장대비 1.08% 하락한 달러당 140.63달러를 기록, '1달러=140엔'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또 스위스 프랑화 대비 달러 가치는 10년래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반면 달러/유로 환율의 경우 1유로당 1.15달러선을 넘어섰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달러/유로 환율이 1유로당 1.15달러를 웃돌은 적은 2021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흔들자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미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타격을 받자 달러가 월요일(21일) 급락했다"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내가 그의 사임을 원하면 그는 매우 빨리 물러날 것"이라면서 파월 의장이 어느 시점에 금리를 낮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파월 의장의 전날 연설 내용을 문제 삼으며 “파월의 임기는 빨리 종료되어야 한다"고 썼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문제 등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임기 만료 전에 사임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정책상의 이견을 이유로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법적 권한은 없다는 해석에 동의하지만, 그에 대한 연방 대법원의 명확한 판례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일각에선 파월 의장 해임보단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통화정책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미즈호증권의 비슈누 바라단 아시아리서치 총괄은 “파월은 트럼프에 직접 보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는 직접 해임할 수 없다"며 “파월은 특정 절차에 따라만 해임될 수 있으며 이는 장벽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해 연준의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며 “그들은 즉각 파월을 해임시킬 필요가 없다. 연준 독립성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인식만 심어주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