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2025년 3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특별한 판결을 내렸다. 2015년 줄리아나 올슨을 포함하여 미국 청소년 21명이 제기한 '줄리아나 vs 미국' 기후소송이 10년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재판 없이 기각됐다. 당시 청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청소년의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미국 대법원은 하급 법원이 2024년 한번 기각한 사건의 원심을 유지하며 원고의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이 미국 행정부에 실질적 해결책을 수립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없는 만큼 기각 결정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이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린 이유이다.
미국 사법부는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거나 사실관계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기각하고 행정청의 의견을 수렴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미국 사법부는 기후소송과 같은 과학적, 정치적 논쟁에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과 달리 2024년 8월 2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녹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탄녹법 제8조 제1항은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재의 판단 논리는 정부가 2030년 이후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량적인 기준이 없어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어서 해당 조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라며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4건의 소송이 병합된 것으로 소송 주체들은 기후위기비상행동, 녹색당, 아기기후소송단(5세 이하 39명, 6~10세 22명, 20주 차 태아 1명)과 환경단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정부는 헌재의 판결에 따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년도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한국 법원은 행정부가 해야할 일에 대한 법적 판단을 위한 법원의 검증능력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판단의 결과로 우리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매년도 감축목표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목표가 년도별 수치로 제시되면 기본법에 적혀 있기 때문에 무조건 모든 정부부처, 지자체, 공공기관과 민간까지 이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발전시설과 산업시설 등은 가능한지 모를 목표를 위하여 현존하지 않는 과학적 기술까지 할수 있다고 가정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모두 이를 지켜야 하고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특히 정부가 매 2년 마다 향후 15년 동안 필요한 전력설비 계획과 발전원별 비중을 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이를 따라야 한다. 상위법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후 탄녹법) 제 8조에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전기사업법 제 25조에 의거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탄녹법이 더 상위법이기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력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무탄소 전원을 확대해야 한다. 전력시스템이 60Hz를 맞춰야하고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목표 자체가 될 수 없다. 유럽은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하여 지속가능실사와 탄소국경조정 등을 연기하거나 현실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의욕이 충만한 목표는 매우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리한 계획의 파급효과는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