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부 나유라 기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업계 1위로 도약하자고 외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듣기에 그리 편치 않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경제단위이고, 업계 1위 기업은 시장에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렇기에 CEO들이 1위 도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1등이 되지 못한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 고객 확보, 매출 증가 등에 난항을 겪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CEO들의 1위 구호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스팸문자, 전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문자와 모르는 전화는 안 받는 게 낫다는 경험칙이 쌓이다보니 중요한 연락을 놓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혹시나 싶어, 혹시 대출 상환에 이상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어김없이 실망하곤 한다. 금융상품을 광고하거나, 대출을 권유하거나, 연회비가 더 높은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금융사 CEO들의 1등 구호는 그래서 불편하다. 기업들이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가급적 많이 판매해야 한다. 상품을 많이 판매한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상품을 많이 판매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당장 내일이 위태로울 수 있다. 지금 이 금융상품이 자사 고객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권유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다. 당장의 상품 판매가 아닌, 고객 신뢰 확보와 고객 편의를 위해 정진하는 CEO는 어떨까. 그런 사고를 가진 CEO는 자리가 위태롭다.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경영권 안정성 확보, 후계 구도 등 후일을 위해서라도 단기간에 빠르게 수익을 내는 CEO를 선호한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들어 6차례에 걸쳐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가장 최근에는 몽골 'G은행'을 사칭한 고수익 해외채권 투자사기에 대한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불법업자들이 G은행 발행 채권에 투자하면 연 11.7%의 높은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현혹하며 투자금을 편취하는 식이다. 금감원은 외화보험에 가입하면 높은 이자율과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권유하는 사례에도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상품을 많이 판매하는 기업이 곧 최고기업이라는 인식은 이래서 위험하다. 지금의 상품 판매가, 당장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될지라도 소비자의 신뢰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들은 결코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도약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일수록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보험설계사들을 불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업계 1위가 아닌 고객 신뢰 1위, 고객 만족이 곧 회사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단순한 사고가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