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조원’ EU 무기 대출기금 ‘바이 유러피안’ 방점…현지합작 K-방산은 ‘기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5.20 17:12

美 의존도 낮추고 자체 무기 생산 역량 제고 목적

유럽, 탄약 등 기본 무기조차 납기일 제때 못 맞춰

정부, EU와 작년 11월 안보·방위 파트너십 체결

코트라 “협력 모델 모색, 규범·조달 기준 이행해야”

천무 다연장 로켓(좌)과 K-2 흑표 전차. 사진=한화그룹·연합뉴스

▲천무 다연장 로켓(좌)과 K-2 흑표 전차. 사진=한화그룹·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200조원대의 무기 공동 구매 대출 기금 마련에 뜻을 모아 역내 생산 제품을 우선 도입한다는 기조가 강화됐다. 이에 따라 현지 합작 법인을 설립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 등 K-방산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은 전날 1500억유로(한화 약 236조원) 규모의 무기 공동 구매 대출 기금(SAFE, Security Action For Europe)을 신설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다음주 열리는 장관급 회의에서 승인이 나면 이는 시행이 확정된다.



이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거나 각국의 무기고 비축을 목적으로 방산 물자 공동 구매를 추진하는 역내 회원국에 EU 예산을 담보로 대출금을 지원해주기 위한 자금 지원 계획이다.


무기 공동 구매 대출 기금 규정 초안에는 'EU 가입 신청국과 후보국,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가'도 공동 구매 참여를 허용한다고 규정돼있다. 그러면서도 완제품 가격 대비 최소 65% 수준의 부품이 유럽 자유무역협정(EFTA) 권역 또는 우크라이나 생산품이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문구는 방산 물자의 부품 중 EU 지역 밖에서 수급해온 비율은 35%를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상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에 방점을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당 규정은미국 등 역외 방산 기업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유럽 내 방위 산업 자립과 공급망 강화를 목표로 한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집단 안보 위협에 직면해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무기 생산 역량을 키우려는 전략적 판단이 반영됐다.


독일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이 제작한 차륜형 자주포 RCH 155. 사진=KNDS 제공

▲독일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이 제작한 차륜형 자주포 RCH 155. 사진=KNDS 제공

유럽 방산업계는 오랜 기간 평화 속에서 미국 안보 우산에 의존해왔다. 또 환경·사회·지배 구조(ESG)가 강조된 10여년 간 투자를 받지 못했고 대량 생산 인프라 증설과 표준화 모두 실패했다. 생산 능력은 수요 급증을 따라가지 못해 비근한 예로 탄약·장비 등 기본적인 무기조차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 최근 수년 간 유럽 방산 조달의 70% 이상이 미국 등 역외 기업에 집중됐고, 유럽 내 생산 역량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 방산 기업들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빠른 납기 등에서 강점을 보이며 폴란드·루마니아를 위시한 동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EU 무기 공동 구매 대출 기금의 규정상 단순 수출 방식으로는 대형 공동 구매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EU가 역내 방산 기업들의 이익을 우선했고, 관련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지에 법인과 생산 설비를 구축한 국내 방산 기업들이 이득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앞서 영국의 기동 화력 플랫폼(MFP) 입찰과 스웨덴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A2와 현대로템의 K-2는 각각 독일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KMW)의 RCH 155과 레오파르트 2에 밀려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 간 무기를 사주는 게 관례여서 탈락한 것"이라며 “유럽의 터줏대감인 독일의 외교력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예견된 수순일 수 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A1 자주곡사포·K-10 탄약 운반 차량 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A1 자주곡사포·K-10 탄약 운반 차량 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한편 우리 정부는 EU와 작년 11월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상태여서 오히려 원칙적으로 자격 요건을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 등은 폴란드 국영 방산 기업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등 '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K-2 전차 △K-9 자주곡사포 △천무 다연장 로켓 등은 현지 생산·조립을 통해 유럽 내 부가가치 비중을 높이고, 납기 준수로 신뢰를 쌓고 있다.


방위사업청도 EU·NATO와의 공급망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공동 연구·개발 등 협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윤웅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브뤼셀 무역관은 “유럽의 재무장 기조에는 다소 제한이 따르긴 하지만 한국 방산업계에 기회를 제공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EU 내 공동 생산과 기술 이전 등 다양한 산업 협력 모델을 모색하고, 현지 규범과 조달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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