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G 재액화 외 저장 효율·안전성↑…경제성·운항 안정성 확보
CSSC 계열사, 佛 GTT 기술 덕에 시장 내 ‘다크 호스’로 급부상
산업연구원 “경쟁국, 친환경·디지털 전환서 빠르게 쫓아올 것”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 CI. 사진=각 사 제공
HD현대와 한화오션이 액화 천연 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과냉각 시스템'에 주목하며 매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중국 조선업계와의 기술 초격차 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22일 본지 취재 결과 HD현대의 조선 부문 자회사 HD한국조선해양은 작년 1월 출원한 '혼합 냉매를 이용한 액화 가스 과냉각 시스템' 기술 특허에 대해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같은 해 7월 등록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올해 4월에는 'SRS'와 'Hi-SRS' 2개 상표를 등록했고 도합 36개에 지정 상품을 걸어둔 상태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SRS는 'Subcooling Re-liquefaction System'의 약어로, LNG 운반선에서 사용되는 과냉각 시스템을 의미한다"며 “출원을 주도한 부서는 가스솔루션연구실"이라고 말했다.
과냉각이란 액체가 얼어야 할 온도보다 더 낮은 온도까지 내려가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개 특허 공보상의 HD한국조선해양 측의 설명에 따르면 혼합 냉매를 이용한 액화 가스 과냉각 시스템은 '펜탄' 등 여러 성분의 냉매를 압축·분리·감압·열교환하는 복합 공정을 통해 LNG를 극저온으로 과냉각한다.
또한 다단계의 열교환기·압축기·감압 밸브·결빙 방지용 우회 밸브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해 냉매의 온도를 조절하고, LNG의 추가 기화에 따른 냉매의 결빙을 억제해 시스템 고장 위험까지 저감한다.
통상 LNG는 영하 162~163도의 초저온에서 저장되지만, 외부 열 유입 등으로 일부가 기화된다. 이때 발생하는 증발 가스(BOG, Boil-Off Gas)는 선박 연료로 쓰거나 재액화해 탱크로 돌려보내야 한다. 증발 가스가 발생하면 기존 액화 가스가 기체로 변해 부피가 늘어나고, 저장 탱크 내 압력이 높아져 폭발 위험성이 커진다. 액화 가스가 기화되는 만큼 운반할 수 있는 양이 줄어 경제적 손해도 발생한다.
과냉각 시스템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고도화된 기술로, LNG 운반선에서 자연 발생하는 증발 가스를 단순 재액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온도가 낮게 만들어 저장 효율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다. 따라서 LNG 운반선의 경제성과 운항 안정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차세대 초격차 기술이라는 평가다.
한화오션은 HD한국조선해양과는 달리 별도의 기술 특허는 내지 않았다. 다만 같은 분야에 활용할 'SRS' 상표를 HD한국조선해양보다 이틀 빠른 올해 4월 30일에 등록하며 관련 역량 확보를 시사했다. 지정 상품 역시 '액화 가스를 이송하기 위한 선박' 등 19종을 설정해뒀다.
업계 관계자는 “과냉각 시스템은 한화오션도 개발 중인 듯 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상표를 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이 SRS에 역량을 쏟아붓는 이유는 중국 조선업계의 LNG 운반선 기술 굴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선박집단유한공사(CSSC)의 자회사 후동중화의 액화 천연 가스(LNG) 운반선. 사진=후동중화 제공
프랑스 가즈트랑스포르&테크니가즈(GTT)와의 기술 제휴 덕에 중국선박집단유한공사(CSSC)의 자회사 후동중화는 2021년 12월 5세대 17만4000㎥급 LNG 운반선을 공개하며 2022년 34척을 수주했다. 후동중화의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 점유율은 2021년 7% 미만에서 2022년 21.8%로 급증했다.
2023년 기준 중국 조선소들은 LNG 운반선 신규 발주분 55척을 확보했다. 이 중 CSSC는 49척을 따내는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시장 내 다크 호스로 급부상했고 380억 위안(7조 원) 이상을 투자해 최신 조선소 2곳을 신설, LNG 운반선 건조 능력을 대폭 확대했다.
반면 2021년 87%였던 한국의 LNG 운반선 수주 점유율은 지난해 41척을 따낸 중국(38%)의 영향으로 62%(68척)까지 밀렸다. 과거 한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LNG 운반선 분야에서 중국 조선사들은 △최신 화물창 기술 △증발 가스 저감 △친환경 연료 적용 등 핵심 기술을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다. LNG 신조선가 격차도 5% 안팎으로 좁혀졌고, 중국은 저가 전략에서 점차 기술력과 품질 경쟁으로 전환 중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설계·생산·조달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산업 생태계와 내수 부족으로 친환경·디지털 전환에서 경쟁국이 우리나라를 빠르게 쫓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부 핵심 기자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조달 측면과 중형급 이하 수리·개조 조선소 부족, 구조조정 이후 최적화 미흡 등 생산, 경쟁국 대비 상대적으로 미약한 선박 금융·내수를 만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