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적인 불안 시달리는 현대인 증가…증세와 치료법
연간 90만명 진료…5년 전보다 30만명 늘어
강박증·공황장애·광장공포증 등 양상도 다양
일시적 불안은 정상, 계속되면 전문의 진료를
명상·규칙적운동 도움…항불안제로 단기치료

▲불안장애를 유발하는 잘못된 '인지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들. 출처=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항상 쫓기는 기분이 들고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편안하지가 않아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러다가 죽는가 싶어서 덜컥 겁이 났어요."
“계속 나쁜 생각만 들어서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나쁜 생각만 하고 있어요."
각종 사건사고, 경쟁사회, 낯선 사람과의 만남 등 현대인의 삶에는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내외 정세의 불안정 △심각한 경제난 △대형 사고 △엽기 범죄 △사이버 사기(보이스피싱 등) △질병걱정 등 불안은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이러한 일그러진 생활 환경 과 삶 속에서 몸과 마음에 불안감이 엄습하는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통계를 보면, 불안장애 환자는 2019년 71만 8143명에서 매년 늘어나 2023년에는 88만 9502명으로 집계됐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강섭 교수는 “적당한 불안은 인간의 생존을 돕지만 정상적 불안을 넘어 병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늘고 있다"면서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성격 탓만은 아니며 불안이 병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불안증은 주로 △감정적 증상 △신체적 증상 △사고(생각)적 증상 등 세 가지로 나타난다.
감정적 증상은 안절부절못함, 초조함, 짜증, 예민한 반응 등이다. 신체적 증상은 심장이 빨리 뛰고(심계항진), 소화가 안되며, 손에 땀이 나고, 손이나 몸의 떨림, 두통, 뒷목 당김, 가슴 압박감, 입 마름, 호흡장애 등이다. 사고적 증상은 닥치지도 않은 위험을 크게 걱정하고, 조그만 것도 크게 걱정하고, 최악의 사태만 상상하는 것 등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불안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오는 가장 흔한 심리적 반응으로, 불안을 통해 우리는 인지적, 신체적, 행동적으로 위험에 대응한다.
가령, △현관문을 나서기 전 가스밸브가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감염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모두 뇌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통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 결과다.
하지만 때로는 불안의 정도가 심해 일상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즉, △사람들 앞에서 실수해 부끄럼을 당할 것 같은 불안감 △뉴스를 통해 접하는 사건사고나 질병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등으로 일상에서 수행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다. 그 일을 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호흡곤란, 어지러움, 두통 등의 신체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 처리 못하고 쌓아두면 '불안장애' 질환으로 악화"
이처럼 '악마의 발톱' 같이 끈질기게 엄습하는 불안장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반복적인 행동과 생각으로 괴로운 강박장애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는 공황장애 △삶의 모든 것이 걱정되어 각종 신체 증상을 일으키는 범불안장애 △광장이나 공공 장소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광장공포증 △사람들 앞에 나서기 힘든 사회불안장애 △특정 장소나 동물 등을 두렵게 만드는 특정공포증 등 불안장애는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석좌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불안에 압도되도록 만드는 생각을 '강박 사고(思考)', 불안을 없애기 위하여 하는 특정한 행위를 '강박행동'이라고 한다"면서 “강박 사고와 강박행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과 같은데, 이는 강박 사고가 일으킨 불안을 강박행동이 감소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강박증 환자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강박 증상이 악화하고, 주위 상황이 호전되면 강박 증상이 완화되므로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박장애는 강박적인 생각과 강박적인 행동이 서로 맞물린다. 예를 들어 가스 불이 켜져 있어 화재가 날 것 같은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강박 사고이고, 이로 인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반복적으로 가스 불을 확인하는 행위가 강박행동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일시적 편안함을 제공할 뿐 궁극적으로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 강박 사고나 강박행동은 환자들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현저한 고통과 기능의 손상을 초래한다.
공황장애는 갑작스럽게 심한 공포나 불편함이 수분 내 최고조에 이르고, 그 동안 호흡곤란, 가슴 답답함, 심장 박동 증가, 발한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극심한 불안,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등과 같은 정신적 증상이 나타난다고 '서울대병원 질병정보'에서 설명한다. 공황 발작이 다시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나 상황을 피하게 된다고 한다.
광장공포증은 대중교통 이용, 공원과 같은 열린 공간에 있는 것, 영화관 같은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 줄을 서 있거나 군중 속에 있는 것, 집 밖에 혼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그러한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는 공황장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 시내 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해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항우울제 사용, 약물 의존성 거의 생기지 않아
범불안장애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 장기간 지속되며, 이를 통제하기 어렵고 불안과 연관된 다양한 신체 증상(불면, 근긴장도 증가 등)을 흔히 동반한다.
사회불안장애는 특징적 증상은 면밀한 관찰이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현저한 공포와 불안을 경험하며, 이는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회피로 이어진다.
특정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공포가 과도하여 이에 노출되면 거의 예외 없이 지나친 공포를 보인다. 높은 곳, 뱀, 곤충, 혈액, 주사기 바늘 등을 접했을 때 울면서 주저앉거나 의식을 잃는 등의 행동이 나타나며 공황 발작에 이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오강섭 교수는 “스트레스가 없는 인생이 없듯, 불안하지 않은 삶은 없다"면서 “불안한 마음을 그때그때 잘 처리해내지 못하고 쌓아두게 되면 불안은 불안장애라는 질환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건강을 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안은 인생에서 겪는 스트레스, 위협, 갈등 상황에서 느끼는 일종의 비상경보기 발동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실제적인 위험이 없는데도 비상경보기가 잇달아 작동해 수시로 불안과 공포감이 밀려온다면 전문의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불안장애 증세가 있다면 근육이완법, 복식호흡, 자기최면, 명상, 규칙적인 운동 등을 통해 증상을 조절하고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 주변에 자신의 문제에 대해 마음을 터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오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증세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전문가와 만나 '자신이 갖고 있는 불안증이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이해하면 그 자체로 불안증이 상당히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따르면, 불안 장애 안에는 다양한 질병이 속해 있어 각 질병마다 치료법이 조금씩 다르다.
약물 치료에는 보통 항우울제(SSRI 등)를 사용한다. 필요하다면, 항불안제(벤조다이아제핀 등)를 단기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약물을 장기간 사용하면 약물 의존성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항우울제는 의존성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약물 치료 외에 다양한 정신 치료, 인지 행동 치료, 이완 기법, 바이오 피드백 치료 기법을 약물 치료와 병용하거나 단독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