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서 또 사망사고…2년 새 3건 발생에도 유임... 노동계 “중대재해법은 누굴 위한 법인가”
정부와 국회, ‘중대재해처벌법은 공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으나 현실은 정반대
소년공 출신 대통령의 질책…“정부의 무관심 속 노동자 생명 가벼워졌다”

지난 6월 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전KPS 하청 직원이 정비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2023년과 2024년에도 한전KPS 사업소 내에서 2건의 사망 사고가 있었던 만큼, 이번 사고는 사실상 '예고된 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8년 故김용균 사고 이후로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전소 현장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관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검토할 예정이다. 노동계에서는 이 사고는 단순한 작업 현장의 비극이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 구조가 반복적으로 생명을 위협해온 구조적 문제의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께 충남 태안군 원북면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종합정비동 1층에서 근로자 김모(50) 씨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발전정비업체 한전 KPS 협력업체 소속 직원이다.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김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김씨는 기계 예비점검 중 멈춰 있던 기계가 갑자기 작동하며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KPS는 산재승인일 기준 2024년에도 신서천사업소와 서울송변전지사에서 각각 1명씩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태안까지 포함하면 최근 2년간 세 건의 인명 사망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KPS의 경영책임자인 김홍연 사장은 이미 지난해 6월 임기가 종료되었음에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신임 사장 제청을 미루면서 여전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2년 내 한전KPS 하청 직원 중대재해(사망사고) 내역. (산재승인일 기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공공기관의 무책임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한다. 한 노동안전 전문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솔선수범해야 할 공공기관에서조차 법이 무시된다면 이는 법치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역시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故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고위험 현장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이는 단순 사고가 아닌 방조된 구조적 살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하청 구조와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피한 공기업…3년간 3건의 죽음, 고의 은폐 의혹까지 제기
이번에 발생한 태안화력 사망 사고는 2025년 들어 한전KPS에서 발생한 첫 사망 사고다. 노조에 따르면 이 사고들 중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송변전지사 사망사고는 현장 관계자와 유족 외에는 상세한 사고경위조가 공개되지 않았다.
한 노무전문가는 “고용노동부는 과연 이러한 사고 내역과 원인, 책임소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만약 인지하고 있었다면 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사고가 공공기관인 한전KPS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국회가 '중대재해처벌법은 공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용노동부와 산업부는 반복되는 사망사고에도 경영진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관련법 적용이 느슨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동계는 '고위험 시설의 안전관리 강화'와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며,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구조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김홍연 사장, 1년째 임기 연장 중…차기 사장 인선 방치한 산업부
문제는 반복된 인명사고에도 불구하고, 경영 책임의 정점인 사장직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이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전KPS 김홍연 사장은 2024년 6월 공식 임기가 종료됐다. 하지만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임 사장에 대한 제청 절차를 미루며 1년 가까이 김 사장이 임기를 연장 중이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의 질책…“정부의 무관심 속 노동자 생명 가벼워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고 당일 SNS를 통해 “기업의 책임 회피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동자의 생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은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직접 지시했다. 산재 피해자 출신인 이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 현장의 신뢰를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 들이는 모양새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안전사고를 넘어 중대재해처벌법의 형해화와 정부의 공기업 관리 책임 부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공공기관이 노동자의 죽음을 반복하고도 그에 대한 책임도, 제도적 적용도 받지 않는다면 민간 기업에 법을 적용하는 것도 설득력을 잃는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선 구호가 무색한 현실"이라며 “지금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보다 더 소박하다. '노동을 하면서도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