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12일 오전 제출…공정위, 당일 수정·보완 요구
시장 가치 예상 범위 벗어나면 재무 건전성 하락 우려
“정권 교체 시기 맞물려 서둘러 정무적 판단” 지적 제기

▲대한항공 본사 간판과 아시아나항공 본사 주차장 내 꼬리날개 형상. 사진=박규빈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마일리지 통합안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제출했으나, 공정위가 제출 당일 곧바로 보완을 요구하며 사실상 퇴짜를 놨다. 이번 결정은 정권 교체 직후 내려진 것으로 '졸속 심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당초 예측된 합리적 통합 비율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한항공의 이연 수익 확대에 따른 재무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여 시장 가치와 재무 건전성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3일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는 전날 오전 자사와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에 관한 방안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이 방안을 도출하는 데까지 대한항공 스카이패스팀은 약 6개월에 걸친 연구와 컨설팅을 진행했고, 임원을 포함한 고위 관계자들도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철통 보안을 기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같은 날 오후 출입 기자단에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해야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통합안에 대해 즉각 수정함과 동시에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마일리지 사용처가 기존 아시아나항공이 제공하던 것에 비해 부족했고, 통합 비율 등 구체적 설명이 미흡했다"며 '아시아나항공 소비자 불이익 방지와 양사 고객 권익의 균형'을 심사 원칙으로 내세웠다. 특히 “현 시점에서 대한항공이 제출한 통합안을 국민께 공개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지속적인 수정·보완을 거쳐 적절한 시점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 당국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입장 표명에 대한항공 직원들은 “점심 식사하고 오니 날벼락을 맞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마일리지 통합 비율은 대한항공의 재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항공사 마일리지는 단순한 포인트가 아니라 고객에게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항공사의 '미래 부채'로 인식된다. 때문에 회계상 '이연 수익'으로 잡히는 미사용 마일리지가 많을수록 재무제표상 부채가 늘어난다.
때문에 탑승 실적 마일리지는 1대 1, 신용카드 등 제휴 마일리지는 적립 기준 차이(대한항공 1500원당 1마일, 아시아나 1000원당 1마일)를 반영해 3대 2(1대 0.66)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공식 보고서를 통해 양사의 마일리지 통합 비율은 국제 선례와 가격·서비스 격차, 마일리지 활용 기회, 항공 동맹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대 0.9가 타당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실제 글로벌 항공사 합병 사례에서도 탑승 마일리지는 1대 1로 통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휴 마일리지는 차등 적용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이 비율이 예상보다 높게 책정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를 더 높은 가치로 인정해줘야 한다.
통합 비율이 시장 가치와 동떨어지는 수준으로 강제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보유자에게 과도한 이익을 제공하게 된다. 동시에 부채로 잡히는 이연 수익이 크게 늘어나 재무 건전성에 부담이 가중돼 이중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사용 마일리지는 대한항공 2조7681억6839만원, 아시아나항공은 9613억2621만원으로 총 3조7294억9460만원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통합 비율에 따라 재무적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고객 신뢰 문제를 넘어 회사 전체의 재무 구조와 미래 투자 여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쳐 당국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정위 요청에 따라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며 “소비자 기대에 부합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궁극적으로 모든 항공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앞으로 심사관의 검토 등을 거쳐 최종 상정할 심사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권 교체와 맞물려 공정위가 지나치게 서둘러 통합안 심사 거부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8년 전에는 재벌 해체를 외쳤던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이 기조에 맞춘 공정위가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