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돌고 돌며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6.16 11:02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장




김봉철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한국유럽학회장

점차적 자유무역을 추구하던 국제사회의 주요국 통상규범들이 최근 들어서 보호주의적 색채를 가지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내 산업에 대한 규제에 적용하던 기준을 역외에 강하게 적용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관세부과를 주요한 무기로 보다 노골적인 통상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이다. 유럽은 통합된 역내시장에 적용되는 여러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술과 공정성 규제 등을 역외기업과 상품 등에도 적용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통상 규제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느려지는 경제발전과 불경기 상황을 타개하고자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조치를 명확하게 강화하는 중이다.


1990년대 출범한 WTO가 진정한 세계무역기구로서 국제사회의 통상환경을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법의 지배라는 '아름다운' 철학을 반영하였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에 팽배하였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통제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부터 각국은 무수히 많은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관세동맹(Customs Union)과 같은 특혜무역협정(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들거나 국가 사이에 이전보다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국제사회는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고 통일된 경제 기준을 만들자는 의지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였다.



2024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 사무국은 양측이 1999년에 시작하여 25년을 소모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마무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EU는 유럽의 1위와 3위이자 세계 3위와 7위의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속한 세계 3대 경제권으로, EFTA와 영국 등 비회원국과도 시장을 공유하며 유럽경제통합의 핵심이다. 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4개국으로 구성되어 매년 2조 2,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는 남미 최대의 경제 공동체이다. 유럽의 EU 27개 회원국과 남미의 MERCOSUR 4개국 인구는 7억 명이고, 이들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유럽과 남미 사이의 FTA는 대서양을 연결하는 경제적 교량을 구축하는 것이며, 환경과 인권 문제 등 양측이 민감하게 생각하던 논점을 무역과 경제라는 매개체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 협상은 EU가 아마존 삼림 벌채 억제와 환경 보호에 관한 의무 조항 등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지체되었는데, 작년 리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브라질이 강력한 환경 문제에 해결 의지를 보이며, 협상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에는 관세율 인상을 주된 수단으로 하는 미국 정부의 무역 공격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 대상에는 중국과 같은 오랜 미국의 무역 불균형 대상국만 포함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등 가까운 경제동맹국도 포함되었다. 물론 EU와 일본 그리고 한국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유예기간을 두고 협상을 벌이기도 하면서, 이러한 사태가 조금 시간을 벌면서 풀어나갈 가능성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전통적으로 추구하였던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철학은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당분간 어떤 식으로든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은데, 이는 결국 1980년대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진행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이전의 보호무역주의 시대와 비슷해진다는 걱정이 많아진다.




한편, 한국은 최근 EU와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EU FTA로 조성된 무역환경이 디지털로 대표되는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양측이 조약으로 대응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EU-MERCOSUR FTA, 미국의 무역 정책, 중국의 대응과 경제불황 등의 변수들이 국제무역환경과 국내의 산업에 주는 영향을 살펴봐야 하는데, 결국 국제통상규범이 돌고 돌면서 반복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논제가 첨가되면서 조금씩 진화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진화하는 국제통상규범을 보면, 진화의 과정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논제가 보이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과제를 가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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