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원전 전문가 “석회암 뒤섞인 태백 URL 부지, 연구용 부적합”
원자력환경공단 “반드시 고준위방폐장 후보지와 동일 지질 필요 없어”
방사선 새는지 확인하는 게 연구 목적, 동일 지질 아니면 의미 없어 반박
총 사업비 5138억, 2026년부터 착공…원전 미래 걸려 신중한 판단 필요

▲강원 태백시에 들어설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개념도.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 지하 500m에 구축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하연구시설(URL) 적합지역으로 강원도 태백을 선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구축지역은 단일 화강암으로만 구성돼야 하는데, 태백 URL 지역은 석회암 등 여러 암석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공단은 연구시설이기 때문에 지하 500m 부근에만 화강암이 분포하면 된다는 입장이고,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방사선이 지층을 뚫고 나오는지 연구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실제 기준과 같은 단일 화강암 암석만 있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태백 URL 부지, 처분 연구시설로 '부적합', 정책적·경제적 낭비 우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16일 에너지경제와의 통화에서 “URL 부지 선정과 관련, 정부가 과학적·기술적 기준보다 행정적·정치적 논리로 부지를 결정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퇴적암 등 부적합한 암반에서 인허가용 데이터를 얻을 수 없고, 결국 추가 비용과 시간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러한 행정적 밀어붙이기는 원자력계 전체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지난해 6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확보를 위한 부지공모를 실시해 그해 12월 태백을 선정했다.
지하연구시설에서는 국내 지질환경에 적합한 처분시스템 개발과 처분개념 연구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과 관련한 여러 기술개발과 함께 전문인력 양성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여기에서 확보한 기술은 이후 추진할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건설 및 운영 과정 등에 활용된다.
연구시설 구축사업은 2026년 시작해 2032년 최종 준공 목표이며, 운영 기간은 2030년부터 약 20년간이다. 총사업비는 약 5138억원이다.
그러나 원자력 전문가들 사이에서 태백 선정이 부적합하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정 교수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태백 URL 부지가 석회암 기반 지질구조로 돼 있어 고준위폐기물 연구시설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연구시설 목적은 지하 150m랑 지하 300m에 균열을 내서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새는지를 알아보는 것인데, 태백지역은 지하 150m랑 300m가 화강암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는 필요한 데이터를 못 뽑아낸다"라며 “결국 필요 데이터를 뽑아내려면 나중에 URL을 하나 더 지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단은 URL 부지유치 공모 공고문에서 사업유치 조건으로 “지하 약 500m 깊이에 부지적합성 항목의 '단일 결정질암'이 최소 6만㎡ 이상 분포하며, 구분지상권 설정 등 필요 행정조치가 용이한 부지"라고 적시했다. 단일 결정질암은 △화성암 또는 고변성암 △육안으로 각각의 광물을 구분하기에 충분히 큰 광물 입자로 구성된 암석 △주 구성 광물이 규산염 광물인 암석 등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공단은 이를 근거로 “태백 부지에서는 지하 약 482m부터 약 700m 깊이까지 충분한 화강암층이 분포하고 있음이 시추 조사 결과 확인됐다. 이는 공모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 등은 화강암이 아니면 연구시설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 교수는 또 태백지역의 과거부터 지속된 광산개발로 다수의 인위적 공동(空洞)이 확인됐다는 점도 부적합 근거로 지적한다.
이처럼 지질적으로 부적합한 지역이 선정된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정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연구 목적 변경에 대한 우려도 있다. 태백 연구시설은 '처분 유사심도에서 국내 고유 암반특성과 한국형 처분 시스템의 성능 등을 실험 및 연구함으로써 지질환경에 부합하는 처분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문에 연구시설에는 실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및 사용후핵연료가 반입되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고 고준위방폐물 처분 연구로 활용할 경우, 애초 구축 목적과 어긋나 국민 신뢰 훼손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에서도 URL의 정책 용도 혼용은 방사성폐기물 정책의 근간을 흔들 위험성이 있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이미 3000억원 이상 예산이 투입된 URL 사업이 추가 예산과 별도 처분장 부지 확보 비용으로 수조 원의 재정부담을 유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자력환경공단의 전문성 부족도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공단이 처분시설 건설·운영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심부처분 관련 경험 및 인력 확보는 미비한 상황이다. 설계·운영 관련 업무의 대다수가 외부 용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핵심 기술 축적이나 연구시설 보유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태백 URL 사업도 실질적 주관·설계·시공이 모두 외주에 의존했고, 정작 처분장 설계·검증에 필요한 시추 및 장기 암반 거동 관측 데이터 축적도 부족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단 해명에도 업계•전문가 우려 여전 “처분장 재검토·공론화 선행돼야"
원자력환경공단은 URL 지질 적합성 논란에 대해 '과도한 우려'라며 “공모 요건과 국제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고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공단은 “태백 부지는 공개 공모 당시의 입지 요건을 충족했으며 지하 500m 심부에 충분한 두께의 화강암층이 분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처분 연구시설(URL)과 실제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은 역할과 목적이 다르며, URL이 반드시 처분장 후보지와 동일한 지질여건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석회암층 존재 가능성과 관련해 “처분시설 부지 요건에서 요구하는 '단일 기반암층' 조건은 실제 처분장 선정 시 적용되는 사항으로, 현재 연구시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단 측은 “일부 보도에서 과도하게 부정적 해석을 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원자력환경공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관련 논란은 단기간 내 가라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정부와 공단의 정책 방향 재조정 및 기술적·사회적 검토가 요구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정범진 교수는 “산업부의 공고문 상 부지 기준에는 지하 약 500m 깊이에 하단 부지적합성 항목의 '단일 결정질암'이 최소 6만㎡ 이상 분포하며, 구분지상권 설정 등 필요 행정조치가 용이한 부지라고 명시되어 있다. 공단의 해명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태백 URL 활용 논의에 앞서 △고준위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공론화위원회 통한 국민 의견수렴 △후보지 별도 검토 등의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처분장 개발 핵심기술의 국내 확보, 공단 역량 강화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실제 처분사업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공론화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