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2년 11월말에 ChatGPT가 공개된 순간부터 전 세계 교육 현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불과 5일 만에 100만 명이 가입했고, 2개월 만에 월 활성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 숫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교육 현장의 반응이었다. ChatGPT는 하루아침에 등장했지만 교육시스템은 수십 년간 축적된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뉴욕시 공립학교가 ChatGPT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가 6개월 후 허용으로 전환했다.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은 모든 과제에 AI 사용 여부 명시를 의무화하였고 이후 부분 허용에 이어 과제별 차별화로 전환했다. 일본은 2023년 7월 '학교에서의 생성AI 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여러 차례수정을 거듭했다. 각 국 교육당국이 금지에서 조건부 허용까지 정책을 번복하면서 일관성을 잃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ChatGPT 공개 직후 한국 교육당국의 첫 반응은 “일단 지켜보자"는 소극적 관망이었다(1단계). 2023년 3월 교육부는 'ChatGPT 등 AI활용 대응 방안'을 발표했지만 내용 자체가 모순적이었다(2단계). “AI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하고 하면서 동시에 “학습자 주도성 훼손 우려"를 표명했고, “디지털 역량 강화 필수"라면서도 “무분별한 사용 경계"를 당부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교육부가 180도 다른 정책을 발표했다. 같은 해 9월에 '2027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과 함께 AI 디지털 교과서(AIDT, AI Digital Textbook) 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3단계). 하지만 ChatGPT 등장 이후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변화는 혁신이라기보다는 혼란에 가까웠다. 학생들의 과제 작성 패턴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교육 현장에서는 상당수 학생들이 AI를 활용하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과제 생태계는 붕괴되었고, 교사들의 평가 방식은 무력화되었으며, 기술 격차는 새로운 교육 불평등을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계가 “AI를 교육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질문에만 몰두했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AI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 성장이다. AI가 이 본질을 강화할 것인지, 훼손할 것인지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핵심 딜레마다.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AIDT 프로젝트는 준비되지 않은 채 새로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장에서는 AI 교육에 대한 체계적 연수를 받은 교사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AIDT의 “맞춤형 학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단순한 난이도 조절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에도 AI교육 분야의 연구성과는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MIT를 비롯한 주요 AI 연구기관들은 AI 교육 시스템이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한 3가지 필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학습자를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이다. 현재 AIDT 시스템은 단순 정답률 분석에만 의존한다. 학습자의 학습 스타일, 인지 패턴, 동기 구조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사고 과정과 실수 패턴을 다층적으로 모델링해야 의미 있는 적응이 가능하다. 둘째, 즉각적인 반응 능력이다. 현재 교육용 AI는 사후 분석에 머물러 학습 과정의 인지 부하나 이해 어려움을 실시간 감지하지 못한다. 해외 연구는 “학습의 마이크로 모멘트를 놓치면 전체 학습 효과가 급감한다"고 경고한다. 셋째, 교사와의 협업 방식이다. AI가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증폭시켜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며, 둘이 함께 교육적 판단을 내리는"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이 세 조건을 한국의 AIDT 현실과 비교하면, 현장 혼란의 원인이 명확해진다. 우리는 기술 도입에만 집중하고 핵심 조건들을 간과했다.
ChatGPT 등장 후 2년 반 기간의 시행착오와 AI 연구계의 통찰을 종합하면, 교육 현장 혼란을 해결할 명확한 방향이 보인다. 첫쨰, AI 교육 안전성 검증 시스템 우선 구축; 전국 일괄 확산을 즉시 중단하고, 권역별 10개 파일럿 스쿨에서 6개월간 집중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ChatGPT 경험 교사들과 AI 연구진이 공동 참여하여 진정한 AI-인간 협력 교육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과학적 기준에 부합되는 적응형 학습시스템 구축: 앞서 제시한 세 가지 핵심 조건을 만족하는 시스템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학습자 인지패턴의 다층적 분석, 실시간 모니터링, 교사-AI 협력 인터페이스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셋쨰, AI 시대 교육학 기반 교사역량 혁신: 기기 조작 중심 연수를 폐기하고, 'ChatGPT 시대 교육 철학' 중심의 체계적 연수를 설계해야 한다.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쨰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AI 교육 평등 보장: 농어촌과 저소득층을 위한 'AI 교육 바우처' 제도와 지역별 'AI 학습 멘토링 센터' 설치가 시급하다. AI 교육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해소하는 도구가 되도록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다섯쨰, 학습자 AI 리터러시와 데이터 주권 확립: 초등학교부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AI에게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기법)과 'AI 비판적 사고'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학생들이 AI 답변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학습자 데이터 권리장전' 제정으로 학습 데이터의 투명한 관리를 보장해야 한다.
AI는 교육을 구원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현재 방향으로는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 AI 교육의 시행착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근본적 재설계에 나선다면, 한국 AI 교육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혁신 모델이 될 수 있다. 핵심은 “기술에 맞춰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에 맞춰 기술을 설계하는 것"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조속한 시작과 체계적 재설계를 통해 새로운 AI 교육 표준을 하루빨리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