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연금, 홈플러스 부도 직전 1156억원 투자금 ‘자진 포기’ 논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6.22 17:30

3월4일 법정관리 신청 직전인 2월26일 RCPS 1156억원 어치 지분 전환 동의해줘

홈플러스, 6월12일 감사보고서에서 “상환권 발행사 이전…회계상 ‘부채’서 ‘자본’ 전환” 밝혀

보통주 전액 손실 이어 RCPS도 회수권 상실…국회 ‘허위 보고’ 논란

홈플러스

▲서울 한 홈플러스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3월4일 홈플러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 총 6121억원의 투자금 일부인 1156억 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지분 전환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이 돈은 사실상 받을 수 없게 됐지만 공단은 최근까지도 국회에 “회수가 가능하다"라고 답변해 온 것으로 알려져 허위 보고 논란까지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

▲홈플러스는 기존 RCPS 부채 약 1156억원을 회계상 자본 항목으로 전환했다. 이 중 58억원은 우선주 자본금으로 계상됐고, 나머지 1150억원은 '주식발행초과금' 등 기타불입자본 항목으로 재분류됐다.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게재된 지난 12일자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와 공단 등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 2월26일 홈플러스에 투자한 1156억원 규모의 RCPS의 상권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홈플러스가 갖도록 하는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는 감사보고서에서 곧바로 이 RCPS를 회계상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했다고 적시했다.


RCPS는 투자자가 발행사에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우선주인 동시에 보통주로 전환해 주식 차익도 노릴 수 있는 사실상의 복합금융상품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회계상 '부채'로 처리된다.



따라서 홈플러스가 1156억원 규모의 RCPS가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했다는 것은 공단에 투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홈플러스 입장에서는 부채 비율을 낮추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만, 투자자인 공단 입장에서는 회수 우선 순위가 낮아져 손실 위험이 큰 자산이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금융권 한 전문가는 “상환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투자자가 아닌 홈플러스에 있다는 점에서, 해당 RCPS는 더 이상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로 전환됐다는 뜻"이라며 “사실상 RCPS가 가진 채권적 성격은 사라지고, 손실이 발생해도 우선 변제를 요구할 수 없는 지분성 자산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2월26일 이같은 계약 체결 직후 홈플러스가 3월4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점이다. 최근 몇년새 경영난에 시달려 온 홈플러스는 3월4일 법정관리 신청 후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으며 대대적인 주식 소각과 지분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단도 '빚'이 아닌 '지분'으로 전환한 1156억원의 RCPS를 돌려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공단이 경영난에 처해 있는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상환 의무를 없애는 방식의 계약을 체결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투자금 회수가 불확실한 주주보다 법적 우선권이 보장된 채권자의 지위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주는 투자금을 고스란히 잃게 되지만, 채권자는 기업 자산 매각 대금으로 변제를 받을 수 있다. 홈플러스의 재무 상황이 악화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2월 홈플러스는 2021년 3월~2022년 2월 순손실을 낸 뒤로 3개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 “6천억 중 절반만 회수…보통주+RCPS 손실 현실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

▲감사보고서 주석에서는 RCPS에 대해 “보유자의 선택에 따라 자산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는 상환전환우선주이나, 당사가 상환 재량권을 보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

한 회계전문가는 “채무성 RCPS를 자본화하면 부채비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구조"라며 “국민연금이 이를 인지하고도 회계상 자산으로 전환을 받아들였다는 건 명백한 투자 회수 포기"라고 설명했다.


앞서 공단은 2015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에 참여해 6121억원을 투자했다. 구체적으로 프로젝트 펀드를 통해 RCPS 5826억원,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보통주 295억원 등이다. 이 중 현재까지 RCPS와 관련해 회수한 금액은 차환(리파이낸싱)과 배당금 수령 등을 통한 3131억원에 불과하다. MBK 운용 펀드에 투자한 보통주는 MBK의 무상소각 방침에 따라 전액 손실이 확정된 상태다.


공단이 RCPS 회수 가능성과 관련해 국회에 허위 보고를 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해 말 홈플러스 보통주 가치를 0원으로 평가해 전액 손실 처리했다. 하지만 RCPS에 대해서는 오히려 투자 원금보다 54.5% 높은 9000억 원으로 공정가치를 산정했다. 국민연금은 민 의원실 측에 “별도 프로젝트 펀드를 통해 투자한 RCPS의 경우, 인가 전 M&A 특성상 인수인과 관리인 간 협상을 통해 일부 소각이나 감자, 병합, 이자율 조정 등 조건 변경이 가능하다"며 “권리 보호를 위한 협상을 지속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홈플러스의 감사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홈플러스가 상환 재량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계약이 변경돼 회계상 자본으로 전환된 사실이 명시돼 어 실질적으로는 회수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단 기금운용본부 측은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개별 투자 건에 대해선 시장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홈플러스 RCPS 투자 건 역시 예외 없이 해당 기준에 따라 설명이 불가능하다"고만 밝혔다.


국회에선 공단 측의 해명과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높다는 홈플러스 회계조사보고서 내용을 고려하면 4884억원도 회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이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금융당국조차 사모펀드의 운영 실태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사모펀드 정보 보고 및 공개 강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경고했다.


민병덕 의원도 “MBK는 보유 주식을 무상 소각하며 기존 투자자 손실을 고스란히 떠넘겼고 이로인해 국민연금도 손실을 면치 못하게 됐다"며 “국민의 노후 자산이 무분별한 민간투자에 소진되지 않도록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투자 내역 공개 의무 강화, 운용사 책임 부과 제도 도입, 사전 리스크 평가 체계 개선을 위한 법제도 정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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