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에 주가 직격탄 '신뢰 회복' 안갯속
구조적 저점 장기화…이익 회복 가시성 낮아
지주 신용도 이미 훼손…추가 강등 우려도 ↑
▲크레이씨(CRAiSEE)
롯데그룹의 핵심 기둥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확대됐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이 반영되며 롯데지주 등 그룹 전반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적자 규모가 오히려 확대되자 시장의 우려가 더 깊어지고 있다. 그룹의 현금창출원(캐시카우)에서 신용도의 추가 하락을 압박하는 재무 리스크의 핵심으로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적 악화와 주가 급락…시장 신뢰 회복은 안갯속
▲최근 1년간 코스피와 롯데케미칼 주가 추이. [사진=iM증권]
최근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케미칼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 5일과 6일, 단 이틀만에 16% 가까이 급락했다. 4일 종가 기준 8만5400원이던 주가는 6일 7만2900원까지 밀렸다. 단기간에 5000억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술적 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주가 급락의 주요 원인은 실적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4일 오후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액 18조4830억원, 영업손실 9436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7.1% 감소했고, 적자 폭은 오히려 확대됐다. 이로써 2021년 이후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규모는 최대치다. 롯데케미칼의 영업손실은 2022년 7627억원, 2023년 3477억원, 2024년 8941억원이다.
특히 4분기 부진이 컸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은 매출액 4조7099억원, 영업손실 433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7% 줄었으며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 2337억원에서 85.7% 확대됐다. 이는 시장 추정치(컨센서스) -2350억원 대비로도 크게 하회한 수준이다.
한화투자증권은 롯데케미칼의 단기적인 실적 회복 가시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화학 시황 부진이 이어지면서다. 주가는 연초 대비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최근 한국 증시 전반의 강세를 감안하면 상승 폭은 사실상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공급 축소에 대한 기대감과 현재 주가 수준을 고려할 때 추가 하락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뚜렷한 반등 모멘텀 역시 부재한 구간으로 판단된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의 4분기 실적은 주요 제품 스프레드 악화와 인니 LCI 초기 가동 비용 부담으로 인해 컨센서스를 하회했다"며 “1분기에도 유의미한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글로벌 화학 업종 구조조정 기대감으로 주가 하방 압력은 제한적이나, 단기적 반등 모멘텀도 부재하다"고 덧붙였다.
2027년까지 이어질 구조적 저점…수익성 개선 한계 뚜렷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을 둘러싼 업황 환경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현재 석유화학 산업을 단순한 경기 하락 국면이 아닌 '구조적 저점' 구간으로 평가했다. 수요가 더 이상 급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수익성이 회복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수요 측면에서 일부 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공급 구조는 여전히 과잉 상태다.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공급 확대 국면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급 불균형이 누적돼 왔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업황 반등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부담 요인은 중국발 공급 과잉이다. 중국 업체들은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내수 시장을 넘어 수출까지 겨냥한 증설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수급 균형은 크게 훼손됐다. 시장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공급 물량이 누적돼 있다. 단기간 내 이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러한 공급 구조를 감안할 때 석유화학 제품의 수급 환경이 유의미하게 개선되는 시점은 2027년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가동 중인 설비 규모가 방대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일부 프로젝트는 향후 수년간 추가 물량을 시장에 유입시킬 가능성도 남아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공급 조정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스프레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공급 과잉 국면은 롯데케미칼과 같은 범용 석유화학 업체에 특히 불리하다. 범용 제품은 '가격을 내가 못 정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경쟁이 심해질수록 수익성을 지키기 어렵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중국 업체들의 자급률 상승 추세가 지속되는 한, 주요 제품 스프레드가 과거 평균 수준을 회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회복 여부와는 다른 문제다. 산업 구조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인식에 기반한 평가다. 과거와 같은 업황 반등을 전제로 한 실적 회복 시나리오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비효율 라인 가동 중단이나 비용 절감과 같은 내부 대응만으로는 구조적인 마진 압박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일부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전반적인 스프레드 수준이 낮은 환경에서는 실질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현재의 업황은 '바닥 통과'라는 표현보다는 저수익 구조가 장기화되는 국면에 가깝다는 것이 신용평가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수요 급락이 멈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공급 과잉과 산업 구조 변화라는 제약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실적과 현금창출력의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문아영 나신평 책임연구원은 “최근 몇 년간 롯데케미칼의 주요 제품인 올레핀 기초유분을 중심으로 산업 내 생산능력 확대가 누적되어 왔고, 중국 업체들의 증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 기간 동안 비우호적인 산업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향후 주요 제품 스프레드는 당분간 과거 대비 낮은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이에 연동하여 회사의 수익성 개선 폭 역시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 신용도 이미 훼손…적자 확대에 추가 강등 우려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은 이미 롯데그룹 전반의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진 상태다. 지난해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우량 등급의 상징이던 AA 밴드에서 이탈한 것이다. 화학 등 핵심 계열사들의 수익성 저하와 현금창출력 약화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롯데지주의 신용도 하락은 롯데케미칼과 궤를 같이한다. 지주회사 구조상 롯데지주의 핵심 수익원은 계열사로부터의 배당금이다. 그러나 그룹 자산의 43%, 매출의 49%를 차지하는 롯데케미칼이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현금 유입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 2022년부터 시작된 신용도 하방 압력은 결국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고, 이후에도 적자 폭이 더 확대됐다는 점이 부담을 키우고 있다.
롯데케미칼발 크레딧 리스크는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됐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전망이 부정적으로 전환되면서 롯데물산,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등 주요 계열사들의 등급과 전망도 잇따라 하향 조정됐다. 계열 통합 신용도가 하락하며 그룹 전반의 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구조다.
지주사의 재무 지표 역시 악화됐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지주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020년 19조원대에서 2025년 9월 말 기준 30조원을 넘어섰다. 이중레버리지 비율도 176.2%로 권고치인 15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계열사는 부진한 반면, 신사업 투자와 계열 지원 부담은 지주사에 집중되며 재무적 탄력성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A+ 등급은 원리금 상환 능력은 인정받지만, 경기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등급이다. 기관투자가들의 선호도는 낮고,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한 차례 등급이 하향된 상황에서 롯데케미칼의 적자 확대가 이어질 경우, 추가적인 신용도 하락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향후 자산 매각 등 외부 현금 유입을 제외하면 재무 부담의 유의미한 완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주가 급락은 롯데그룹 전반의 크레딧 리스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학 부문이 구조적 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롯데의 신용도 역시 당분간 하방 압력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민호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주력 계열사의 신용도 변화 여부, 자체·계열 합산 재무구조 변화에 따른 구조적 후순위성 변동 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라며 “롯데케미칼 등 핵심 계열사의 신용도 변화는 롯데지주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