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경제 언박싱 ④ RE100은 불가능한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6.22 15:05

기후와 에너지는 인류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접근보다 이념적 선입견이 앞서거나, 정보는 넘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대통령 선거 때마다 화제가 된 RE100

“RE100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자체는 좋은 구호이긴 하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5월 23일 대선 후보 TV토론)"


최근 대선 토론 때마다 RE100은 논란이 되었다. 202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RE100이 뭐죠?"라고 물었다가 '기후에너지 문제를 모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5년 대선 토론에서는 RE100을 놓고 후보들은 물론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논평을 내며 논쟁을 벌였다.



RE100은 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이다. 이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수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실제로는 어떤지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와 10년간 현장에서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판매해온 김승희 KEI컨설팅 매니저의 자문을 받아 살펴본다.



이상준 교수, 김승희 매니저


다른 나라 기업들은 이미 RE100 달성했다

RE100은 영국에 기반을 둔 단체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가 2014년 시작한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마이크포소프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면서 민간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상준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RE100은 그 중 일부인 기업이 쓰는 전기만을 떼어내 단순한 목표, 알기 쉬운 이행점검 등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RE100에는 현재 445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표적인 기업 36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30년까지 기업이 쓰는 전기의 60%, 2040년에는 90%, 2050년에는 100%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이 목표다.



RE100 참여 기업들(그래픽= 한국 RE100협의체)

▲RE100 참여 기업들(그래픽= 한국 RE100협의체)


지난 5월 클라이밋그룹이 발표한 〈2024 RE100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회원사들이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작년에는 세계 424개 기업이 평균 53%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그 중에서도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이미 99.8%, 애플은 98%, 인텔 97% 나이키 96%, UBS 82%, 로열필립스 99.2%, 뉴발란스는 90% 등 이미 연도별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2050년 목표인 100%에 거의 도달했다. 반면에 한국 기업들은 삼성전자 31%, 삼성화재 4%, SK하이닉스 30%, SK홀딩스 18%, 현대차 13% 수준에 불과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은 데이터센터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전기량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이미 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전기를 많이 쓰는 제조업이 많아서 RE100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김 매니저는 “RE100 연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재생에너지를 가장 구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 제조업이 많아서 RE100 달성이 어려운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도 제조업체들이 많지만 그 지역들은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쉬워서 RE100을 달성하고 있다.



RE100 안되면 수출 못 하나?

세계적인 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게도 RE100을 요구하는데, 한국 기업들에게 불이익은 없을까? “RE100은 기업들에게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데 두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글로벌 RE100에 가입한 한국 대기업은 36개지만, 한국 정부가 국내 여건에 맞춰 운영하고 있는 K-RE100에는 현재 1천여 개 기업이 가입돼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부품 공급업체들에 RE100을 요구하면 협력업체들도 이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RE100은 단순히 대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견 중소기업들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유럽 자동차업체 BMW, 볼보, 다임러벤츠의 경우 부품 공급업체들에게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구매량을 줄이거나, 다음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통보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회사는 탄소 감축을 하지 못해 공급망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다만 RE100이 기업 경쟁력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업체 노스볼트(Northvolt)는 RE100에 모범적인 회사였지만 최근 파산했다. 이상준 교수는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RE100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대부분 RE100은 권고 사항이지 강제 조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RE100 성장 추이

▲글로벌 RE100 추이. 2024년에는 세계 424개 대기업이 평균 53%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폐지해야" 한 목소리


RE100을 안한다고 수출기업이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왜 그렇게 RE100에 뒤쳐졌나? 두 사람은 ① RE100용 물량이 적고 ②비싸다고 했다.


RE100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地熱), 조력(潮力)의 6가지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열, 조력이 거의 없고 수력발전이나 바이오매스는 RE100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사실상 한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이 전부다. 현재 한국에는 태양광과 풍력을 합해 30여 기가와트(GW)의 설비용량이 있고, 이들이 연간 45~50 테라와트시(TWh)의 전력량을 생산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등에 쓰는 전기 사용량만 연간 20TWh 정도다. 기업들의 수요에 비해 재생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가격 또한 일반 전기료보다 비싸다. 한전의 산업용 전기는 1kWh에 180원 정도인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는 210원/kWh 수준이다. 해상 풍력은 300원/kWh 안팎으로 훨씬 비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든 전기가 한화로 70원/kWh 정도인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RE100 장벽이 많은 나라

▲RE100 실행에 장애가 많은 세계 10대 지역. 그 중에서도 한국이 첫번째로 꼽혔다.


한국 기업들이 RE100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은 RE100 산업단지를 전국에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두 사람은 RE100 산업단지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폐지하고 입찰제로 가는 것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PS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기 위해 2012년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두 전문가의 얘기다.


첫째 RPS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발전 공기업으로만 흘러가고 민간 기업들이 살 수가 없다. 둘째 현재 RPS 제도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춰 경제성을 높일 유인이 적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원전이나 다른 발전원보다 값이 싸져서 경제성이 높은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김승희 매니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뜩이나 없는 자원을 놓고 RPS라는 정부 수요와 민간의 전력구매계약(PPA) 수요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RE100을 지원해주려면 RPS를 폐지해야 한다. 정부가 사주는 물량을 줄이고 민간이 살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준 교수는 “RPS 제도가 10여 년 간 재생에너지 물량 확대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물량에만 집중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가 경제적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RE100은 '실제로'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게 아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RE100은 실시간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는 게 아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용한 전력량만큼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전기에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보통 직접 연결되기보다 기존 전력망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전선 안에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전, 석탄, 천연가스(LNG) 등이 만든 전기가 다 섞여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만 분리해낼 수 없다.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의 한계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환경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의 전력사용량과 실시간으로 일치시킬 수가 없다. 태양과 바람이 없을 때는 전기를 생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따라서 물리적 전기는 기존처럼 공급받되, 해당 전기가 재생에너지로 생산됐다는 인증서를 사게 된다. RE100은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디선가 생산된 재생에너지라고 치자'라고 하는 셈이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사진= 구글 데이터센터 홈페이지).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사진= 구글 데이터센터 홈페이지). RE100은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사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물리적인 전기 조달을 100% 재생에너지로 하는 데이터센터는 아직 지구상에 없다.


RE100의 한계

한국은 RE100도 쫓아가기 바쁜 상황이지만, RE100은 한계가 있다. RE100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고 세계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주의 별처럼 많은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11년이 넘도록 400여개만 회원이 되었다. 새로 들어갈 만한 대기업도 별로 없다. RE100이 더 확대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전기는 온실가스 배출의 일부에 불과하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은 전기도 많이 사용하지만 제조공정 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따라서 RE100은 중요한 이니셔티브이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일부 분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RE100이 실시간 재생에너지가 아니라는 점도 한계다. 그래서 클라이밋그룹은 2021년 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4/7 CFE(Carbon Free Electricity)로, 매일 24시간, 주 7일 실시간으로 무탄소 전기를 달성하자는 더 강력한 프로젝트다. 구글, 아스트라제네카, 슈리시멘트, 보다폰 등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과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설비를 갖춘 화력발전도 포함시켰다. 24/7 CFE는 RE100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여서 현실적으로 원전을 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희 매니저는 “재생에너지 시설이 늘어날수록 LNG발전소, 양수, ESS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전원이 같이 늘어나게 된다. 저는 재생에너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재생에너지만으로 데이터센터에 물리적 전기를 100% 공급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요한데 지금은 세계 어디서도 재생에너지만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RE100 자체는 한계가 많지만, '재생에너지를 통해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국제적인 흐름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RE100이 민간 캠페인이라면,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RE100을 달성했다. 따라서 'RE100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틀렸다. RE100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제도와 시장을 개편해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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