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위협에 유가 상승시 전력도매가도 덩달아 상승
연료 필요없는 재생에너지, 전력도매가 상승 부담 완화 가능
이명박 정부도 2008년 유가 폭등에 ‘저탄소 녹색성장’ 내놔
클라이밋그룹 “재생에너지 확대, 韓 에너지 안보 강화할 것”

▲미군 공습 이후 촬영한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위성사진. 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공급의 최대 초크포인트인 중동 호르무즈해협 봉쇄 위기가 커지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인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오르자 고유가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으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재명 정부도 국제유가가 폭등할 경우 이미 공약으로 제시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과감히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이란 의회는 미국의 핵시설 폭격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해협 봉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있어 해협 봉쇄가 임박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길이 약 160㎞에, 좁은 곳은 폭이 약 50㎞ 정도에 그치지만 페르시아만을 대양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나라로 오는 중동산 원유의 대부분이 거쳐가는 해협으로 전세계 전체 원유 수요의 약 30%가 이 해협을 거친다. LNG도 전 세계 물동량 4억톤 중 20%에 해당하는 약 8000만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집계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국제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은 전력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상승으로 이어진다.
SMP는 가장 비싼 발전원인 LNG 발전 비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전력당국은 LNG발전보다 연료비가 덜 들어가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발전, 석탄 발전을 가동한 후 LNG 발전을 가동한다. 이 때 가동되는 LNG 발전원에게 지급하는 SMP가 전체 전력도매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실제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원유와 LNG 가격이 상승하자 SMP도 폭등했다. 2022년 12월 월평균 SMP는 킬로와트시(kWh)당 268원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월평균 SMP가 kWh당 125원과 비교하면 두 배 넘게 비쌌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SMP 상승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설치만 하면 연료가 들어가지 않는데다가 연료비가 비싼 LNG 발전을 발전순위에서 밀어낼 수 있어서다.
이서진·유종민 홍익대 교수의 공동 논문인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한계가격의 변화'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량이 전날보다 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 SMP는 0.005%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 이 효과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8년 중국의 엄청난 수요 증가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폭등했다. 그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고유가 대책으로 청정에너지 개발을 중심으로 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이 정책으로 재생에너지산업에 1차 붐이 생겼지만, 곧이어 금융위기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붐도 사그러들고 말았다.
이재명 정부는 국제 탄소감축 압박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겠다고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공약을 효과적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기후에너지부도 신설할 예정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23년 30기가와트(GW)에서 2030년 78GW, 2035년 107.8GW, 2038년 121.9GW로 늘어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23년 49.4테라와트시(TWh)(8.4%)에서 2030년 120.9TWh(18.8%), 2035년 179.9TWh(26%), 2038년 205.7TWh(29.2%)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 계획이 윤석열 정부에서 정해진 것인 만큼 이재명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치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캠페인을 주도하는 클라이밋그룹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정책 제안을 담아 공개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공개서한에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전력망 인프라 투자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개선 등의 과제가 담겼다.
헬렌 클락슨 클라이밋그룹 CEO는 “한국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목표를 33%로 상향하고 PPA 제도를 개선한다면, 이는 투자 유치는 물론 에너지 안보 강화와 한국 경제의 경쟁력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