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현 금융부 기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영화 '부당거래'에 등장해 유명해진 대사다. 이는 최근 새 정부의 '빚탕감 정책'을 접한 한 은행권 관계자의 입에서도 나온 문장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뚜껑을 열면서 '배드뱅크' 추진 방향도 윤곽이 잡혔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채무 탕감 대상은 113만명으로 7년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금융권에서 일괄 매입해 소각할 방침이다. 이번 원금 감면 대상엔 취약계층에서 저소득층으로 기준이 확대됐고, 지원 기간도 늘려 코로나 이후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10만명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16조원 규모의 채무 탕감을 위해 필요한 예산 8000억원 중 정부가 4000억원을 부담하고 금융권이 나머지를 분담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최소 3000억원 이상 지원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은 금융 소외계층을 통 크게 돕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통 큰 지원'을 외치고 뒷감당은 은행권 주머니를 통해 메우려 한다는 목소리다. 한 관계자는 “말이 협의지, 실질적인 부담을 떠안는 건 금융권이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상생금융 요구에 지난해 4조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던 은행권은 이자수익 감소와 연체율 상승으로 건전성 부담이 높은 업황 속 사실상 강제적인 자금출연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은행권의 마음이 무거운건, 재정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정책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서 '빚을 안 갚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는 다수의 유튜브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모든 정부가 빚 탕감을 해주는데 이걸 놓치고 받지 않으면 바보"라는 식으로 광고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앞서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 탕감한 취약계층 대출 원리금이 최소 18조원에 달했지만 가계 평균 신용대출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은행권에선 “지원 규모도 부담이지만 정부의 명분 좋은 요구에 충실하게 지갑을 열어야 하는 형국이 될 때가 있다"며 “은행의 재원 충당이 사실상 명령처럼 작동하고, 공적 재원을 통한 빚 탕감은 어느새 당연해진데 반해 정책 성과는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재정적자 3% 이내 관리'라는 재정준칙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계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재원을 충당하는쪽도, 도움을 받는쪽도 정책 효과와 형평성에 공감할 수 있도록 부담 주체에 대한 논의나 성실상환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보다 깊게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