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發 대규모 번호이동 예상…보조금 경쟁 과열될듯
지원금 공시 의무·상한규제 폐지…‘깜깜이 계약’ 우려
‘고가 요금제+단말’ 고착화…이용자 차별 극대화 가능성
“통신-제조사 담합구조 원인”…자급제 도입논의 재점화

▲단통법 폐지 주요 내용. 그래픽=김베티 기자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후속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초기 혼란이 우려된다.
SK텔레콤 유심(USIM·가입자식별모듈)정보 해킹 사고 이후 번호이동 가입자에 대한 위약금을 면제키로 한 상황에서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고, 이용자 차별이 발생할 수 있기 떄문이다.
업계에선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통신사-제조사 간 담합 구조로 보고 '절충형 완전자급제'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7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단통법이 오는 22일 폐지되면서 보조금 경쟁이 심화할 전망이다. 단말기 지원금 공시 의무와 상한규제가 사라지는 게 핵심이다. 통신 3사 간 마케팅 경쟁을 촉진해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지만,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잖다.
가장 큰 문제는 후속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로썬 단통법이 폐지되면, 법안 제정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공시지원금 제도와 함께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조항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존엔 △가입 유형(번호이동·신규가입·기기변경) △요금제 △이용자의 거주지·나이 등 신체 조건 등 사유로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을 막아왔다.
하지만,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제한 사유 중 가입 유형·요금제를 제외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구체적인 단말기 지원금 지급 조건 및 규모를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불리한 조건으로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단통법 폐지 이후 일시적으로 단말기 지원금이 증가할 수 있지만, 고가 요금제와 단말기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통신사와 통신사, 통신사와 제조사 간 담합이 견고해진 상황에서 일종의 '윈윈 전략'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고가 단말기 중심 유통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는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못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현행 25% 수준의 요금을 할인하는 선택약정 할인제도의 실효성도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개정 법 조항을 살펴보면,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대신 '지원금을 받지 않은 이용자에 요금할인 등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통신사 입장에선 선택약정 이외의 요금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자율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 및 고시 폐지·신설 작업을 추진 중이다. 시행령엔 △통신사·제조사의 차별 유도 등 불공정행위 금지 △지원금 정보제공 강화 △단말기 선택권 보장 방안 △이용자피해 방지 및 구제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최근 김태규 부위원장 사임으로 이진숙 방통위원장 단독 체제가 되면서 해당 법안을 의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인 체제에선 법안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 수 없다. 특히 새 정부 들어 방통위 조직개편이 급물살을 타면서 한동안 상임위원 임명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업계에선 오는 22일까지 시행령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일각에선 단통법 폐지안에 '절충형 완전자급제'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통신사는 요금서비스 판매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 판매점만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단말기 지원금+요금제' 결합 판매에서 비롯되는 통신사-제조사 간 담합구조를 깨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외산 단말기를 유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소비자 선택권을 다양화한다는 취지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통신 정책 방향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6월 단통법 폐지 필요성을 언급하며 “통신사-제조사 간 담합을 막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통신 정책의 큰 틀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로 설정한 상태에서 이같은 법이 도입될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한 단말기 공급이 확대돼 외산폰 등 보다 저렴한 신제품 단말기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그러면 알뜰폰과 보급형 이용자의 선택권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저가형 단말기 가격 경쟁이 확대되면서 프리미엄 스마트폰 가격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