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사조위 중간발표 조종사 과실 프레임 씌우기” 비난
항공전문가 “ICAO·사조위 조사는 책임소재 규명과 별개”
협회 “당사자 배제 알지만 사조위측 신뢰·투명성 저버려”
“조종사 과실 명확한 근거 제시 않아 오해 자초” 지적도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 OI
정부 차원의 제주항공 여객기 무안공항 참사 조사에 유가족측 외부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라는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이하 조종사협회)의 요구에 국내 항공 전문가들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 규정에 위배된다"며 정면반박했다.
더욱이 조종사협회가 이같은 국내외 관련 규정을 분명히 알고도 참사의 국민 정서를 핑계로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도 우려를 드러냈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조종사협회는 하루 전인 21일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에 조종사 과실 프레임을 씌우려는 국토교통부와 항철사조위의 잘못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앞서 조사위는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2216편 참사 관련 중간 브리핑을 지난 19일 갖고 “조종사가 손상되지 않은 왼쪽 엔진을 꺼 사고가 확대됐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에 조종사협회와 제주항공조종사 노동조합, 유족 등은 “편향된 책임 전가“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어 조종사협회는 21일 성명서에서 “국토부 산하 사조위가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선다"며 “불투명한 조사 진행과 책임전가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를 포함한 전체 사고 조사 관련자료를 공개해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를 시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부를 향해서도 사고의 근본 원인인 조류 충돌 및 로컬라이져 둔덕 설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항공안전법을 개정해 조류 관리·감시체계, 공항 시설물 관리규정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인 공항 구조물과 위험요소 제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조종사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비행 환경의 구현을 위해 책임 있는 조치의 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협회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 건 사고 조사를 가장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조위가 현재 국토부에 종속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체로 조사에 대한 독립성·객관성을 무너뜨릴 만한 명백한 이해 충돌 여지가 있고, 사고의 책임 당사자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이 조사에 개입한 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조종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면 그 어떤 국민도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협회는 “사고 조사에 유가족 단체가 지정하는 외부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조사 진행 전 과정을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가 지난 21일 발표한 성명서 중 두 번째 요구 사항에 '사고 조사에 유가족 단체가 지정하는 외부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조사 진행 전 과정을 재검토하라'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사진=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 제공
그러나 이같은 협회 주장에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국제·국내 항공사고 조사 규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내용이며, 평소 규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조종사협회가 정반대의 입장을 보인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ICAO Annex) 13의 제3장 3.1과 3.2에 따르면, '조사는 사고 예방이 유일한 목적이고, 책임 소재를 가리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조사단 구성에 대해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의 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국내 규정도 이를 준용하고 있어 동일한 입장이다. 사조위 운영 규정 제29조 제1항에는 조사단 구성 시 '사고 당사자 및 이해 관계자는 제척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시돼 있다. 역시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원칙으로, 유가족·항공사·조종사 등 직접적인 이해 관계를 가진 당사자들이 조사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취지에서다.
전문가들의 지적에 조종사협회 관계자는 “해당 규정을 알고 있지만 지난 주말 급작스런 사조위의 발표 시도가 그동안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한 조사를 기대하던 우리의 믿음을 저버린 행위라고 판단했다"며 “사조위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입장을 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이해관계자의 개입을 허용할 경우 과학적인 조사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 한 전문가는 “조종사협회 말대로라면 사고 조사기관이 유족들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국내외 사고 조사 규정을 어기는 언행"이라고 힐난했다.
더욱이 제주항공 참사 조사에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BEA)도 참여할 정도로 국제 공조가 이뤄졌기 때문에 사조위가 단독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종사단체가 사고기 기장(PIC)의 '무오주의(無誤主義)'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 관계기관이 특정 내용을 조사 공표할 때에는 해당 분야에 근거 자료를 꼭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인 항공사고 중 60~80%가 '인적 오류(human error)'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따라서, 무안공항 참사 사조위가 국토부 하부조직으로 있다는 점만 빼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방향으로 조사가 이뤄졌다는게 항공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반면에 사조위가 정무적 감각이 없는 탓에 과도하게 몸을 사린다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에서 익명을 요구한 항공 관계자는 “사조위가 공청회 직전에 모든 자료를 공개했을텐데, 사실상 조종사 과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보여주지 않아 오해를 샀다"면서 “국토부와 유착관계 논란을 해소할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이 반발한다고 발표를 미룬 것은 국가기관의 권위와 위신을 스스로 해치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