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장 지하연구시설 갈등 확산…학계 ‘부지 부적합’ vs 관가 ‘적합’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7.24 13:33

원자력학회, 태백 선정 두고 “지질 부적합, 정치적 입김” 의심

지하 500m까지 전부 화강암이어야 vs “연구용 감안해야”

야당 유력정치인 지역구 입김 작용 지적엔 “기술검증 사업”

산업부 원전 국장 조만간 학회 만나 의견청취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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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용 지하연구시설 조감도.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방사성폐기물 심지층 처분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시설(URL) 후보지로 강원 태백이 선정된 것을 두고 원자력 학계와 산업부·한국원자력환경공단(코라드)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원자력학회 소속 전문가들은 태백 부지의 지질 평가 방식 자체가 비상식적이며, 특정 부지를 밀어주기 위한 조작 가능성마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산업부와 코라드는 기술검증을 위한 가상부지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산업부의 원전 담당자는 조만간 학회 측과 만나 이번 사안과 관련한 논의를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학계 “지질 평가항목은 온·오프 개념인데 정량 평가…사기성 짙어"

24일 원자력 학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자력환경공단이 지난해 12월 URL 후보지로 태백시를 선정한 가운데 총 8개 평가항목 가운데 '지질' 항목에 15/100점을 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항목이 사실상 '적합/부적합(온·오프)' 여부로 판단돼야 할 매우 중대한 사안인데, 이를 단순히 정량 평가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추후에 건설될 고준위방폐장은 지하 500m 전체가 화강암 기반의 단일암층의 환경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태백은 일부만 화강암이고 이암, 사암, 석회암 등이 혼재된 복합 퇴적암층 환경을 갖고 있다.





태백 URL 후보지 선정 평가방식과 원자력학회에서 주장하는 일반적 기준과의 차이.

태백 URL 후보지 선정 평가방식과 원자력학회에서 주장하는 일반적 기준과의 차이.

게다가 평가위원 8명 전원이 태백 부지에 동일하게 13.5점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져, 사전 조율 가능성과 평가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원자력학계 관계자는 “8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같은 점수를 줬다는 건 통계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건 사실상 사기"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파장 우려…원자력 전체가 국민 신뢰 잃을 수도"

정범진 경희대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한국원자력학회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대응 특별위원회'는 '태백 연구용 URL 부지선정에 대한 입장과 제언' 성명을 통해 크게 3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고준위특별법에는 '연구용 URL은…처분시설의 지질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연구…하는 시설'로 돼 있으나, 태백 부지는 이에 맞지 않다는 점 △평가항목 중 암반 균질성 및 연속성 항목은 부지의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요건이나, 평가에서는 전체 배점 중 14%만 책정했다는 점, 또한 실제 연구가 계획된 지하 150m와 300m 심도에 대한 평가는 누락됐다는 점 △영구처분장과 다른 지질환경에서 얻은 데이터는 영구처분장 안전성을 담보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별위는 “현 계획이 그대로 추진되면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인허가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가 어렵고, 제2의 URL을 건설해야 할 것"이라며 “특별법 취지와 과학적 원칙에 기반해 부지 선정을 원점에서 재추진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자력학계는 태백 선정 과정에서 야당 유력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공론화되면 여권의 정치적 공세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이 사안이 정치 쟁점화될 경우, 원자력 전체가 '지역 이권사업'으로 오인될 수 있다"며 “학회는 산업부·코라드와 선을 긋고, 원자력계 전체가 휘말리지 않도록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은 대한민국 원자력계의 오랜 숙제이면서 대국민 신뢰 확보가 관건이라는 게 원전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URL 부지 선정을 둘러싼 논란은 처분기술 신뢰성과 행정 투명성 모두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타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시점"이라며 “URL 사업의 취지와 범위에 대한 명확한 소통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태백 지하연구시설(URL) 후보지 선정을 둘러 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과 반응.

태백 지하연구시설(URL) 후보지 선정을 둘러 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과 반응.

환경공단 “연구용일 뿐…실제 처분부지와는 무관"

이에 대해 원자력환경공단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태백 부지의 지하 482~518m부터 약 700m 깊이까지 화강암층의 기반암이 분포한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아직 처분부지 선정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처분시설의 지질환경과 유사한 조건'을 전제·예단해 부합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간적 선후관계에 맞지 않는다"며 “URL 선정이 실제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위치와 직결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치화될 이유가 없는 순수 기술검증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평가항목의 세부 배점은 부지선정절차를 주관한 부지선정평가위원회가 분과별 논의와 전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영구처분장 부지와 유사한 지질환경에 제2의 URL을 건설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준위 특별법'에 '연구용 지하연구시설'과 '처분시설 부지 내 지하연구시설'을 모두 건설·운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처분시설 부지 내 지하연구시설'은 처분시설이 건설될 부지에 설치하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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