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 은행부터 점진적으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8.19 14:21

자금세탁·자본유출 등 잠재 리스크 경고
비은행 발행 허용 땐 금융구조 흔들릴 우려

달러 스테이블코인 대체 효과엔 회의적 시각
국내 가상자산 성장 속도 감안한 단계적 도입 강조

이창용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 관련 추가 보고를 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은행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시작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성급한 도입이 금융시장과 통화정책 전반에 예기치 못한 파급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시점 등에 대한 질의에 답하면서, 자금세탁·자본유출·통화량 조절 등 다양한 위험 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히 발행 주체와 관련해서는 “고객신원확인(KYC)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만 허용해야 한다"면서도, 비은행 대기업까지 문을 열 경우 기존 은행 중심의 금융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내로우뱅킹(대출 없이 지급기능만 수행하는 은행)을 허용하는 효과를 낳아 은행 예금과 수익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유출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자본자유화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액 자산가가 이를 해외 거래소에 예치할 수 있고, 이는 곧 원화 예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자본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매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한은은 현재 지급준비율을 통해 은행을 거쳐 통화량을 조절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비은행 금융기관을 통해 발행될 경우 조절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발행사가 국채를 담보로 잡고 있다 해도 통화 당국이 신속히 국채 매각을 요구해 유동성을 흡수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의존을 끊기 위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세계적으로 전체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 기반인데 모든 세계가 달러를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많은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줄어들 것이냐에 관해 한은은 회의적으로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해외 사례와의 차이도 언급했다. 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로 가상자산 거래에 쓰이지만 한국은 가상자산 제도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 정도를 지켜보면서 지급수단으로서의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는 것이 한은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은 “국채를 담보로 삼으면 안전자산이 뒷받침되므로 유동성 문제가 없고, 예금 전체 양도 변하지 않는다"며 조기 도입을 주문했지만, 이 총재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예금 구조가 소액에서 기관 예금으로 전환되면 시장 유동성에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면서, “스테이블코인 발행·허가 과정에 통화당국이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채 담보를 보유하더라도 발행사 신용이 불안하다면 투자자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코인 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송재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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