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열 영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경열 교수 영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비물질문화는 눈에 보이는 건물, 자동차, 의복과 같은 물질문화와 달리, 예술·전통·가치관·공동체적 신뢰·도덕·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과 같은 무형의 자산을 뜻한다.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이주 노동자를 지게차에 묶어 들어 올리는 가혹 행위가 뉴스에 보도되면서 우리나라 비물질문화의 수준과 대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물질문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본 후, 우리나라 비물질문화의 수준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와 사는 집, 입고 다니는 의류 수준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먼저, 2024년 한국의 명목 GDP는 약 2조 달러(세계 10위권) 수준이고, 1인당 GDP는 약 3만 3천 달러(2023년 기준)로 OECD 평균보다는 약간 낮지만, 동아시아 신흥국보다는 높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 7위권 수출국이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철강,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업에 강점이 있다. 자동차는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세계 5위권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2025년 현재, 한국은 1가구 1차량 보유가 보편화되었고, 등록 차량은 약 2,600만 대에 달하고 있다(인구 2명당 자동차 1대꼴). 둘째, 우리나라 대표적인 주거 형태는 아파트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아파트 거주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공급되면서 형성된 독특한 주거 문화이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율은 약 52%이다. 즉, 2020년 기준 일반 가구 2,093만 중 1,078만 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고, 단독주택에는 30%인 635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의 패션·화장품 소비는 세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패션·화장품·의류는 'K-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주요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물질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공동체 간 신뢰, 도덕 수준,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척도로 그 나라 정신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의 대인 신뢰 수준은 OECD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OECD(2023)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라는 응답은 약 53%로,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70~80%대)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다. 신뢰가 낮다는 것은 곧 공동체 의식이 제도적·정서적으로 약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24년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지수(CPI)에서 한국은 64점(100점 척도)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균(44점)보다 높은 수준이며, 세계 180개국 중 30위를 기록했다. 세계 정의 프로젝트(WJP)의 법치 지수에서 한국은 0.73점(1척도)을 꾸준히 유지해 왔으나, 부패 관련 평가는 0.67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즉, 제도적 규범과 도덕적 원칙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만, 경제 규모에 비하면 도덕 지수는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비물질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두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11년 1월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살린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닥터헬기가 도입되었다. 이 일을 주도적으로 했던 아주대 이국종 교수는 어느 언론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닥터헬기 발전을 위한 고견을 나누었다. 기존 아파트 단지에 더해 광교 신도시까지 개발되면서 유명 건설사 아파트들이 밀려들어 오자, 입주민들이 헬리콥터 소음을 문제 삼아 외상센터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상욕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졌다.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는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이승으로 끌고 오는 소리였으나, 주민들에게는 정적을 깨뜨리는 소음에 불과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 의식에서 비롯된다. 연대와 상생, 공존의식이 있는 유럽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려한 고층 빌딩에 살면서 주변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문화 지체 현상'에 속한다. 물질문화의 속도(아파트 수준)는 시속 300km이지만, 비물질문화의 속도(공동체 의식)는 시속 30km에 불과하다. 아울러 서두에서 언급했던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이주 노동자 지게차 사건이다.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근무하는 스리랑카 국적의 30대 근로자는 지게차에 실린 벽돌 더미에 비닐로 몸이 칭칭 감긴 채 결박되어 끌려다니다가, 급기야 리프트를 올려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정부가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나그네를 무례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물질문화를 이룩한 나라다. 아파트, 자동차, 의복과 같은 생활 수준은 선진국과 견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양 속에 숨겨진 비물질문화의 빈약함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를 드러낸다. 공동체적 신뢰 부족, 도덕성 약화, 약자 배려의 결핍은 닥터헬기 소음 민원과 이주 노동자 학대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비물질문화의 발전 속도와 물질문화의 발전 속도의 불균형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 사회적 갈등과 신뢰의 붕괴를 낳는다. 이제 한국 사회는 눈부신 경제 규모와 생활 수준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과 공동체적 연대를 확보해야 한다. 제도적 규범을 강화하고, 일상 속에서 신뢰와 배려를 실천하며,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를 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