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위기 속 드러난 비자 제도의 허점, 전화위복 삼아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9.15 11:01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강국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미국에서 구금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 등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가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근로자들은 체포·구금된 지 8일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됐다. 미 이민당국은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을 벌여 475명을 체포했고, 이 중 한국인이 300을 넘었다. 게다가 이민세관단속국(ICE) 홈페이지에 단속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개까지 했다. 우리 근로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한 사태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행이 한미 양국간 긴급 협의를 통해 구금된 근로자들이 귀국했지만, 이번 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첫째, 단속 요원들이 전쟁터(war zone) 들이닥치듯 공장 건설현장에 진입하였는데, 동맹국가 투자기업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전격적, 대규모 작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이 공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막은 뒤 약 500명의 단속요원이 현장을 급습했다. 단속에는 헬기와 군용 차량이 동원됐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고려대에서 개최된 심포지움 기조연설에서 “동맹에 대한 합당한 처사가 아니다. 안타깝고 화난다"고 말했다.


둘째, 한국기업 건설 현장 근로자들은 중남미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데, 심한 대우를 받았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현지 인력이 단기간에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 생산 안정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이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 취업비자 발급은 제한돼 있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핵심 동맹국임에도 호주, 싱가포르, 칠레가 받고 있는 전용 비자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 기업들은 미국에 직원 출장을 보낼 때 최대 90일 단기 관광 및 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 주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B-1)' 비자 등을 활용했다. 바이든 정부에서는 이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으나, 트럼프 정부 들어 엄격해지고 있다.



셋째,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10일 경과한 시점에서 한국기업 공장에서 대규모 체포·구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700여조의 선물보따리를 안기고도 한미 제조업 동맹의 상징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자국에 투자하라고 다그치나 비자 확충에는 미온적이다. 참 이기적이다. 이 와중에서도 러트닉 상무장관은 관세합의 서명을 압박하면서, “한국 근로자 구금 책임은 전적으로 현대차에 있다"며 한국측에 책임을 돌렸다.


넷째, 이재명 대통령이 “주미대사관과 주애틀랜타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사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총력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나, 주미대사는 이 대통령이 당선된 후 얼마 안 되어 불러들여 공석이다. 대사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사는 주재국 고위인사를 긴급히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필요할 경우 항의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원래는 후임 대사 임명절차가 끝나 부임할 준비가 되면 기존 대사를 불러들이면 된다. 이것이 관행이고 국익에 부합되며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특임공관장이라는 이유로 주미대사를 소환해 버려 현장 대응능력을 약화시켰다.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가 우여곡절 끝에 자진 출국으로 일단락되면서 이제 관심은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 개선을 이루느냐에 쏠리고 있다. 한미 외교당국은 워킹그룹을 만들어 신속한 논의를 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비자 문제의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조만간 미국 내 공장 구축 활동을 위한 단기 파견자 등 비자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국민의 미국 내 작업·취업 등을 위한 비자 확대 문제는 해묵은 이슈로,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는데 이번 구금사태를 계기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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