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李대통령 “주 4.5일제 반드시 해내야”
6·3 조기 대선으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정책·공약 실현이 본격화하고 있다. '잼코노미'는 '잼(이재명 대통령의 별칭)'과 'Economy(경제)'를 합친 말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하거나 이슈화한 경제 현안을 중심으로 주요 정책과 시장 변화를 분석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숙제로 꼽혀온 장시간 노동 문제가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많이 일하고도 생산성은 낮다"는 진단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공약하면서다. 한국의 전통적인 '월화수목금토일' 근무가 '월화수목토토일'로 바뀌면서, 노동시간 단축·생산성 향상·삶의 질 개선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주몬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도 “앞으로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많이 일하고 생산성은 떨어지고 국제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겠나"라며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 워라밸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 길게 보면 일자리 늘리는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소년공 시절 휴일이 늘어났던 경험을 언급하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책적으로는 최대한 빨리 가고 싶다.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점은 미안하다"고 말해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다.
◇ 해외는 주4일 확산…한국은 여전히 '과로 사회'
해외에서는 이미 주 4.5일제나 주 4일제를 제도화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22년 연방정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했다. 벨기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주 4일제를 시행했다. 반면 여전히 주 5일제가 표준인 국가도 많다. 대만은 일부 기업이 주 4.5일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주 5일·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이며, 미국 역시 공정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일·40시간을 '풀타임' 근무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노동법상 주 5일·44시간 근무를 표준으로 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평균보다 132시간 길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국가는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칠레·이스라엘 등 5곳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31개국 중 노동시간은 세 번째로 많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20번째로 적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함께 생산성 혁신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의 삶의 질은 물론 국가 경제 활력마저 저해한다는 지적이 주 4.5일제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도 논의의 배경이다.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에 달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30년에는 고령 인구 비중이 25%,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력 감소와 연금·복지 부담 증가는 물론 성장 둔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를 결합해 노동시간은 줄이면서 장기 근속과 일자리 나눔을 동시에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기업들은 생산성 하락과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주 4.5일제가 정년 연장과 결합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정년을 연장하면 5년 후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 비용이 30조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5~29세 청년층 9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해외 생산이나 자동화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국정과제 채택으로 입법 논의 본격화
정치권에서는 입장이 팽팽하다. 여당은 과로사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사업주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가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에 나섰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과로사 방지법은 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대선 때 약속드린 주4일제 시대로 가는 길목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작년에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 포괄임금 폐지, 연차휴가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실노동시간단축 패키지 법안'도 발의한 바 있다.
반면 야당은 주 4.5일제 도입이 노동시장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격차가 이미 큰 상황에서 4.5일제가 시행되면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 혜택은 대부분 대기업과 거대 노조 소속 고임금 근로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가 해당 사안을 국정과제로 포함한 만큼 논의 속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도 곧바로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법제처는 지난 17일 '국정과제 입법계획'을 공개하며 올해 안에 '실노동시간 단축지원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은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세액공제와 신규 고용 인건비 지원을 제공해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야 협의를 거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한 기업을 지원할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된다. 특히 생산성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 고용이 불가피한 만큼, 대기업보다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