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기업자금대출 잔액 상승세
‘생산적 금융’ 위해 자본 규제 손질
연체율 증가…건전성 부담은 난제
위험가중치 조절에 ‘인위적’ 비판도

▲정부가 기업 등 생산적 금융에 은행권의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자본 규제를 손질하면서 기업대출로의 자금 이동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와 생산적 금융 전환 정책 발표 이후 기업대출 위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고 있다. 일각에선 건전성 관리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데다 정부의 자본 규제 개선이 위험가중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28일 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권의 기업자금대출 잔액은 지난해 2분기 기준 1383조3408억원에서 올해 2분기 1414조2627억원으로 2.2% 가량 늘었다. 상반기 이후 가계대출 규제가 발표되는 등 자금이 중소기업 등 기업에 대한 대출로 이동한 결과다.
정부가 기업 등 생산적 금융에 은행권의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자본 규제를 손질하면서 기업대출로의 자금 이동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해야 하는데, 여기엔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두고 산정한 '위험가중자산'이 영향을 준다. 위험도가 높은 주식은 반영 비중을 높이고 안전한 담보 대출은 비율을 낮게 잡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도 위험이 높은 자산일수록 은행이 많은 자본을 확충하도록 했다.
개선된 규제에 따르면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을 현행 15%에서 20%로 높인다. 주식의 위험가중치는 현행 400%에서 250%로 낮춘다.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펀드에도 주식의 위험가중치 변화를 적용하며, 위험가중치 100% 특례를 받는 펀드 요건도 명확히 했다. 자본 규제 개선으로 국내 은행의 BIS 총자본비율은 현재 15.95%(6월 말 기준)에서 약 0.24%p 상승할 전망이다. 정부는 BIS 비율 상승으로 은행이 추가로 쓸 수 있는 자본이 약 31조60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연체율 상승폭이 크거나 취약부문 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을 중점적으로 지켜볼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권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늘어가는 건전성 부담이 은행권으로선 난제다. 가계대출 위험가중치를 올려도 기업대출의 위험 가중치가 훨씬 높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구조조정 시기에 기업대출 부실 확대로 은행 건전성이 위협받았다. 코로나19 이후 중소기업에 대출을 늘린 뒤 2023년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말 은행권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이 0.57%를 기록하면서 건전성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직전달인 6월 기준 0.52%였던 연체율이 7월엔 0.05%p 늘었다. 연체채권 정리규모가 약 1조6000억원을 기록해 전월 대비 약 4조1000억원 급감하는 등 기저효과가 발생한 영향이다.
부문별로는 기업대출 연체율이 0.67%로 전월 0.60% 대비 0.07%p 증가했다. 특히 중소법인 연체율이 전월 대비 0.11%p 상승해 가장 큰 오름세를 보였다. 가계대출은 0.43%로 전월 0.41% 대비 상승폭(0.02%p)이 크지 않았다.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증가 추세에 접어들었다. 6월 말 기준 KB국민은행(전년 0.33%→올해 0.36%), 신한은행 (0.30%→0.40%), 하나은행 (0.33%→0.46%), 우리은행 (0.32%→0.48%) 연체율이 일제히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연체율 상승폭이 크거나 취약부문 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을 중점적으로 지켜볼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권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은 신용위험이 확대할 가능성에 따라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유지하도록 대비할 방침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자본 규제 개선이 되려 시장에 왜곡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계대출은 담보가 뚜렷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출임에도 되려 위험가중치를 높이는 인위적인 조절이 은행 영업 흐름을 해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아울러 정부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을 늘려야하는 가운데 동시에 손실흡수능력도 키워야 하는 부담이 양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시장 상황에 민감하고 건전성에도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에 따라 은행권이 위험성을 어느정도 떠안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