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스무 기타가와 등 3인 수상
‘구멍 많은 고체’ MOF가 세상 바꿔
온실가스 정화에 물부족 문제 해결
수소 저장에 맞춤형 신소재 개발도

▲지난 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기자 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키다가와 스스무(일본), 영국 태생의 리처드 롭슨, 오마르 M. 야기(미국-요르단)가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사진=AFP/연합뉴스)
올해 노벨 화학상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에너지·환경 문제 해결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연구에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8일 일본 교토대 기타가와 스스무, 호주 멜버른대 리처드 롭슨, 미국 UC버클리대 오마르 M. 야기 교수에게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이들이 수상하게 된 것은 금속과 유기 분자를 결합한 새로운 결정 구조, 바로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 MOF)를 만든 공적 때문이다.
MOF는 겉보기엔 단단한 결정이지만, 내부는 미세한 구멍으로 가득하다. 이 다공성 구조 덕분에 각설탕 한 조각 크기의 MOF가 축구장 여섯 개 면적의 표면적을 지닐 수 있다. 그만큼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표면이 늘어나, 소량으로도 막대한 양의 가스나 액체를 흡착·저장할 수 있다. 이 독특한 '분자 스펀지'는 기후위기 대응, 물 부족 해결, 청정 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하이너 링케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수상 발표 자리에서 “MOF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기능을 지닌 맞춤형 물질을 만들 기회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탄소 포집과 오염 정화 – '기후 스펀지'의 시대
MOF의 가장 큰 잠재력은 온실가스 포집(Carbon Capture) 이다. 기타가와 교수는 1997년 MOF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간단히 방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Bulletin of the Chemical Society of Japan』, 1998, DOI: 10.1246/bcsj.71.1739). 이후 UC버클리의 야기 교수는 이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 구조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캐나다 기업 스반테(Svante)는 MOF 'CALF-20'을 활용해 시멘트 공장의 배기가스에서 CO₂를 제거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산업 배출가스 감축의 실질적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Nature, 2025.10.8).
또 다른 응용은 환경오염 정화다. 미국 연구진은 MOF를 이용해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불리는과불화화합물(PFAS)을 물에서 분리하고, 사린가스 등 독성 물질을 흡착·분해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23년 포스텍-버클리 공동연구팀은 MOF를 이용해 대기 중 수분을 포집하는 시스템을 개발, '네이처 워터(Nature Water)'에 발표하기도 했다.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가 노벨 화학상 수상 다음 날인 9일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사막의 공기에서 물을 — '분자 공기청정기'가 빚은 기적
야기 교수팀은 2018년 MIT의 에블린 왕 교수와 함께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공기에서 식수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Nature Communications, 2018, DOI: [10.1038/s41467-018-03162-7]). 습도 20% 이하의 건조한 공기에서도 MOF는 공기 중 수증기를 흡착했다가 낮에 햇빛으로 가열되면 수증기를 방출하고 이를 응축해 물로 만든다.
이는 전기나 에너지원 없이 햇빛만으로 물을 얻는 친환경 기술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물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 야기 교수는 “공기 속 물 분자를 '보이지 않는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Science, 2025.10.8).

▲영국 태생의 화학자 리처드 롭슨이 멜버른 대학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멜버른 대학이 제공한 이 사진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발표되기 전에 촬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AFP/연합뉴스)
◇청정연료와 에너지 저장 — 수소사회로 가는 관문
MOF는 수소(H₂)와 메탄(CH₄) 같은 기체 연료를 고밀도로 저장할 수 있다. 기존의 고압·극저온 방식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2023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Hydrogen Storage in Microporous Metal-Organic Frameworks", DOI: 10.1126/science.1083440)에 따르면, MOF는단위 부피당 수소 저장량이 기존 탱크 대비 최대 2.5배에 달한다. 이 기술은 연료전지 자동차 등 차세대 수소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MOF 내부 공동(cavity)은 촉매 역할을 해,온실가스를 유용한 연료나 화학물질로 전환하는 탄소 재활용 촉매 반응에도 쓰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화학과 오마르 야기 교수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 노벨 화학상 수장자로 발표되기 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망상화학(Reticular Chemistry)'이 여는 맞춤형 물질 시대
야기 교수는 MOF 개념을 확장해 '망상화학(Reticular Chemistry)'이라는 새로운 화학 체계를 정립했다(Nature, 1995, DOI: 10.1038/378703a0). 이는 분자 단위의 블록을 조립해 원하는 구조와 기능을 구현하는 개념으로, 에너지 저장소재·촉매·의약품 전달체 등 다양한 맞춤형 신소재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합성된 MOF는 10만 종 이상, 매달 500종이 새로 발표되고 있다(University of Cambridge MOF Database, 2025). AI를 활용해 특정 목적에 맞는 구조를 예측·설계하는 연구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산업 전환과 녹색경제의 촉매
MOF는 탄소중립 산업 전환의 '촉매'로도 평가받는다. 특히 시멘트·철강 등 탄소 다배출 산업에서 배출가스를 선택적으로 분리·저장할 수 있어 순환형 탄소경제(Circular Carbon Economy) 구축의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킴 젤프스 교수는 “이 구조는 화학적으로 제어 가능한 분자 여과망으로, 산업 공정의 탈탄소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공기에는 탄소·수소·산소·질소가 모두 있다. 이 단순한 원소들로부터 단백질·식량·연료를 만들 수 있다면 공기는 곧 '보이지 않는 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OF가 그 '보이지 않는 금'을 현실로 만드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탄소 포집에서 수소 저장, 물 생산까지, 세 과학자가 설계한 이 '분자 스펀지'는 기후위기 시대의 가장 작고 가장 강력한 인류의 도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