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 25.6% 불과…“육성 로드맵 필요”
美 ‘최혜국 약가’ 방침에 글로벌 빅파마 ‘코리아 패싱’ 우려
정은경 장관 “원료의약품 예산 편성·이중 약가제 도입” 시사
“약가제도 대대적 개편” 기대감 vs “재정부담 가중” 회의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각 상임위원회별 국정감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주요 현안들이 속속 불거져 나오는 모습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의약품 관세 부과 방침과 약가 인하 압박, 중국 제약바이오기업 견제 등 여파로 불확실성이 심화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응 마련이 필요해지면서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신약 약가' 제약바이오 업계 현안 국감서 분출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복지위 국감에서 가장 부각된 현안으로 지난 15일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한 이른바 '원료의약품 자급률' 문제가 꼽힌다.
이날 백종헌 의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들어 “국가 보건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5.6%로 저조한 반면, 중국(37.7%)과 인도(12.5%)에 대한 의존률은 총 50%가 넘어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따른 공급중단 우려가 크다는 게 백 의원 지적이다.
실제 의약품 공급이 중단된 사례도 적지 않다. 앞서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 '원료의약품 수급을 이유로 공급 중단된 의약품 품목'이 지난 8월까지 총 108건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평균 10개 이상의 의약품 품목이 원료 수급 불안으로 공급중단되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3월부터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국가필수약을 대상으로 약가를 68% 우대하는 정책을 본격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 시행 후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제약사와 의약품 품목의 약가우대 신청 건 수는 단 한건도 집계되지 않아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 사진=백종헌 의원실 제공
'신약 약가' 산정 문제도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지난 14일 복지위 국감 도마 위에 올랐다.
한지아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대한민국이 약가는 싸지만 신약은 실종되는 국가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약가 탓에 타 국가 대비 규모도 작은 국내 시장에 글로벌 신약기업의 진입을 견인할 동력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한 의원은 “최근 (국내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 기업들이 약값 노출 전에 철수하고 있다"며 “유방암 치료제 파슬로덱스 철수로 환우들이 우려를 표했고, 이미 들어오지 못한 희귀난치질환 루푸스 치료제도 있다"고 강조했다.
美 의약품 관세發 불확실성 '증폭'…해법 시급한데 정부 대책은 '요원'
올해 국감에서 표출된 제약바이오업계 현안들은 미국발 관세 여파로 발생한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해법 마련이 한 층 더 시급해진 상황이다.
원료의약품 자급 문제의 경우, 최근 심화한 미중간 갈등과 맞물려 공급망 불안 우려가 커진다. 미국에서 입법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생물보안법'이 대표 사례다.
중국 제약바이오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인 생물보안법은 원료의약품을 제제 품목으로 포함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종 입법·시행되면 미중 무역갈등 심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마무리 과정에 있는 우리 정부와 기업을 겨냥한 중국의 돌발 제제 가능성이 변수로 점쳐진다. 원료의약품에 대한 중국 의존도(37.7%)가 높은 우리 기업으로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이 강조되는 이유다.
이에 백종헌 의원은 국감에서 △'혁신형 원료의약품 생산기업 트랙' 신설 △국내 개발·생산 의약품 사용 우대 정책 마련 △정부 차원 '원료의약품 육성 로드맵' 수립 △제대로 된 연구 용역 실시 등 4개 정책을 제안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해 “내년 원료의약품 자급화 관련 예산 157억원을 신규 편성했다"며 “국감에서 지적된 사항을 고려해 종합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맞는 대응책은 딱히 없어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무역 상대국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모습=연합뉴스
신약 약가 문제의 경우에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최혜국 약가(MFN)' 제도로 글로벌 제약기업이 우리 의약품 시장에 신약을 출시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 우려가 커진 까닭이다.
MFN은 미국 내 약가를 다른 주요국 중 가장 약가가 저렴한 국가(최혜국) 수준까지 인하하는 내용이 골자다. 업계는 우리나라가 MFN 기준에 포함되면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약가 인하를 막기 위해 미국 대비 20%대 수준 약가인 우리 의약품 시장에서 철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정 장관은 국감에서 “MFN으로 우리 시장에 신약 도입이 지연되거나 철수할 위험이 있어 신약에 대한 보상을 강화해 신속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이중 약가제'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중 약가제는 실제 의약품 가격과 고시 가격을 이중으로 책정해 우리 시장에 진입하는 신약 약가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내용이 골자다.
아울러 복지부가 내달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상정할 안건으로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중 약가제를 중심으로 한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이중 약가제 도입에 따른 재정부담이 증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일부 약사단체에서는 이중 약가제 도입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약가제도 개편 추진 지연 가능성도 감지된다.
약사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16일 이중 약가제 도입과 관련한 성명을 내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최혜국 약가제도를 핑계로 내세웠지만 이중 약가제는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약가 불투명성 확대를 위한 끼워맞추기에 불과하다"며 이중 약가제 도입을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