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이윤 추구에 빠져 66년 지난 기술 방치…안전 시스템 15개 연쇄 붕괴”
“보잉 상대 5전 전승, 이번에도 승리 자신…과실 10% 입증돼도 100% 배상”
“조종사 과실 수준, 수십 년 문제 방치한 보잉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미미해”
“한국서도 유족과 무안국제공항·제주항공 상대 법적 책임 반드시 물을 방침”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발언 중인 찰스 허만(Charles Herrmann) 허만 로 그룹(HERRMANN LAW GROUP) 변호사. 사진=박규빈 기자
“조종사들은 의지했어야 할 시스템을 강탈당했습니다. 그들은 스위치를 조작했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항공기의 안전 시스템이 그들을 저버린 셈입니다".
16일 제주항공 2216편 참사 유가족의 미국 소송을 대리하는 찰스 허만(Charles Herrmann) 허만 로 그룹(HERRMANN LAW GROUP) 변호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허만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참사의 본질을 '보잉의 총체적인 시스템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보잉이 수십 년간 안전을 외면한 대가가 이번 참사로 이어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허만 변호사는 “사고의 책임은 공항과 항공사, 보잉 세 주체에 있지만 우리의 소송은 항공기를 만든 보잉의 과실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66년 된 기술, 이윤 추구에 안전은 뒷전"
허만 변호사는 사고기인 보잉 737-800 기종의 근본적인 문제로 1958년에 설계된 전기·유압 시스템 아키텍처를 지목했다.
그는 “기자 여러분이 지금 사용 중인 휴대폰이나 노트북과 비교해 보라"며 “보잉은 66년 전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오래된 시스템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보잉이 맥도넬 더글러스(MD)를 인수한 후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CEO였던 스톤 사이퍼가 “'더 이상 엔지니어링 회사처럼 운영하지 않겠다. 우리는 이윤을 원한다'고 직접 말했다"며 “그 후 본사를 항공기 제조 공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시카고로 옮겼다"고 지적했다.
허만 변호사는 “이윤 추구를 위해 전기·유압 시스템 아키텍처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외면한 것"이라며 이를 보잉의 '중과실(Gross Negligence)'이라고 규정했다.
“엔진부터 랜딩기어까지…15개 안전 장치 연쇄 붕괴"
허만 변호사는 사고 당시 항공기가 처한 상황을 “거의 모든 단일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요약했다. 그는 “엔진 고장으로 시작해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FDR)와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CVR)가 멈췄고, 교류 전원 시스템에 엄청난 고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는 “착륙 시 속도를 줄여주는 플랩, 슬랫, 보조익 등 날개의 어떤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며 “조종사는 랜딩 기어를 내릴 수 없어 브레이크도, 엔진 역추진 장치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발전기 고장 시를 대비한 배터리와 인버터 등 백업 시스템조차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안전 착륙을 가능하게 하는 15가지 안전 시스템이 모두 고장 난 것"이라고 밝혔다.
“보잉과 다섯 번 싸워 다 이겨 이번에도 마찬가지"
허만 변호사는 “과거 보잉을 상대로 5번의 소송을 제기해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이번 소송에서도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매우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법의 '연대 및 개별 책임(joint and several liability)' 원칙이 유족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여러 피고 중 한 명에게만 책임이 일부 인정돼도 그 피고가 전체 손해 배상액을 우선 지급해야 한다.
허만 변호사는 “설령 보잉의 과실이 10%만 인정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손해 배상액의 100%를 보잉에게 청구할 수 있다"며 “나머지 90%를 다른 책임 주체들로부터 받아내는 것은 보잉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 연방항공청(FAA) 통계를 인용해 미국법 적용 시 항공사고 사망자 1인당 평균 보상액이 1300만 달러(약 180억 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美 소송은 시작일 뿐…한국서도 무안공항·제주항공 상대 법적 책임 물을 것"
허만 변호사는 미국 소송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도 법적 절차를 진행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의 소멸시효 2년이 지나기 전에 제주항공과 무안공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 제기 시점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보잉과의 소송 경과에 달려있다"면서도 “만약 추측해야 한다면, 약 1년 후쯤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소송을 통해 사고 원인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책임 주체들의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 보잉 코리아 측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면서도 당사 정책상 법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발언 중인 찰스 허만(Charles Herrmann) 허만 로 그룹(HERRMANN LAW GROUP) 변호사. 사진=박규빈 기자
아래는 찰스 허만 변호사의 기자 회견 일문일답 내용.
Q1. 유족 측은 보잉의 낡은 시스템과 내부 경고 무시, 훈련 미비 등을 주장하지만 해당 시스템은 60여년 간 미 연방항공청(FAA) 감항성·형식 인증 등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왔다. 보잉의 설계 결함과 사고의 인과 관계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A1. FAA가 특정 항공기를 인증했다는 사실은 법적으로 과실 여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FAA도 실수를 하며, 실제로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보잉 맥스 기종도 승인한 바 있다. 우리는 FAA가 아닌 보잉의 과실을 입증하면 되며, FAA 승인 여부는 보잉에 법적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행정적 승인과 실제 운용상의 과실은 별개의 문제다.
Q2. 보잉을 상대로 5번 모두 승소했고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법률적 근거는 무엇인가?
A2. 사고 당시 조종사가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15개의 안전 시스템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소송에서 입증 책임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항공기 자체에 대해서는 보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제주항공 측이 정비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예외가 될 수 있지만, 현재까지 그런 증거는 없다.
Q3. 소장을 보니 보잉 본사는 버지니아에 있는데, 워싱턴주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상 보상액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A3. 사고 항공기가 제조·판매·최초 인도된 곳이 워싱턴주이기 때문에 워싱턴주 법원에 관할권이 있다. 현 본사 소재지인 버지니아와 한국에도 관할권이 있다. 보상액은 개별적으로 산정해야 하지만 FAA 정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법을 적용한 항공 사고 사망자 평균 보상액은 1300만 달러다. 이는 한국의 보상 기준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다.
Q4. 사고 책임 주체들인 보잉·무안공항·항공사/조종사의 과실 비율을 어떻게 보는가? 현재 유족 14인만 소송에 참여했는데 대표성에 문제가 없나?
A4. 개인적인 견해이며 증거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수십 년간 문제를 개선할 시간과 자원이 있었던 보잉과 무안공항의 책임이 훨씬 크다. 조종사들은 불과 몇 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잠정적으로 보잉 40~50%, 무안공항 30%, 조종사 및 항공사 20% 정도로 본다. 14가족은 전체 유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족을 대표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Q5. 사고는 새 한두 마리가 아닌 거대한 새떼와의 충돌로 알려졌다. 그 정도 규모라면 최신 엔진이라도 견디기 힘든 것 아닌가?
A5. 맞는 말이다. 몇 마리가 엔진에 빨려 들어갔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설령 법적 기준인 4마리를 초과하는 새떼와 충돌해 두 엔진이 모두 파괴되었더라도 항공기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랜딩 기어·플랩·슬랫·브레이크 등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어야 한다. 이 시스템들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모든 승객이 생존했을 것이다. 엔진 고장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해도 그 이후의 안전 시스템 실패는 명백히 항공기 설계의 문제다.
Q6. 다른 로펌도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협력할 계획이 있는가? 또한 보잉의 '의도적 위법 행위(Intentional Misconduct)'를 입증할 수 있다고 보는가?
A6. 현재 미국에서 이 사고와 관련해 보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로펌은 우리뿐이다. 다른 로펌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보잉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 전문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보잉이 의도적으로 사고를 유발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윤 추구를 위해 50년 넘게 낡은 시스템의 개선을 외면한 것은 '의도적 위법 행위'는 아닐지라도 '중과실(Gross Negligence)'에 해당한다고 본다.
Q7. 미국 소송은 시작됐는데 한국에서의 소송은 언제쯤 시작될 예정이며 피고는 무안공항과 제주항공이 되는가?
A7. 미국 소송의 경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국의 소멸 시효인 2년이 만료되기 전에 제주항공과 무안공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추측하자면 지금으로부터 약 1년 후가 될 것 같다.
Q8. 보잉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했다는 주장으로 이해하면 되는가? 또한 미국 소송의 입증 책임은 원고와 피고 중 누구에게 있는가?
A8.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했다는 이해가 정확하다. 미국 소송에서도 기본적으로 입증 책임은 원고(유족 측)에게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우리가 '랜딩 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고장' 사실을 입증하면 그 고장이 왜 자신들의 결함 때문이 아닌지를 반박해야 하는 책임은 보잉 측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입증 책임이 전환될 수 있다.
Q9. 오는 12월 한국 정부의 사고 조사 중간 보고서가 발표된다. 이것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까?
A9.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부분인데, 정부 조사 보고서는 미국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따라서 보고서 내용이 소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보고서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관계를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조종사 과실 여부 등 흥미로운 정보가 포함될 수는 있다.
Q10. 현재까지 조사에서 기체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고, 사고 후에도 해당 기종의 운항이 중단되지 않았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11. 우리와 우리 전문가들은 소장에 명시된 것처럼 15가지에 달하는 다수의 결함을 발견했다. 한국 정부는 무안공항을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조사 과정에 유가족 대표는 배제된 채 공항·정부·보잉만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되는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우리는 법정에서 우리 측 전문가들을 통해 보잉의 결함을 입증할 것이다.
Q12. 소송에 참여를 고민하는 다른 유족들이 있는가?
A12. 그렇다. 많은 분이 고민하고 있으며, 앞으로 소송 참여 인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