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늘고 태양광·전기차 각광”…중동 전쟁에 ‘천연가스 시대’ 흔들리나 [이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3.30 13:30

에너지 수급 불안에 각국은 석탄 회귀
소비자들은 비용 부담에 전기차·태양광 주목

EU-CARBON/POLAND

▲(사진=로이터/연합)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여파로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현실화하자 각국 정부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석탄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화석연료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석탄 퇴출 흐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소비자들은 에너지 비용 급등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와 태양광 등 전기화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같은 위기가 석탄 의존을 되살리는 동시에 청정에너지 전환을 자극하는 상반된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에너지 시장에서 천연가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 에너지 쇼크에 '석탄 회귀'…전력 공백 메우는 각국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천연가스 공급 충격으로 주요 수입국들이 석탄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인 2022년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지만, 이번 에너지 대란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크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 단지가 이란 공습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가스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가스 가격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을 경우 각국의 석탄 발전 비중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유럽 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50유로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올여름 석탄 발전량이 전년 대비 약 20%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MWh당 약 54유로로, 지난해 말(28.161유로)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러한 흐름이 유지되면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에서 석탄 사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독일 역시 전력 가격 안정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던 석탄 발전소 재가동을 검토 중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석탄으로의 전환은 특히 아시아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중동산 석유와 가스 의존도가 높은 데다 가격 상승을 흡수할 여력이 제한적인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주요 LNG 수입국들은 이미 대규모 석탄 발전 설비를 보유하고 있어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석탄 사용을 확대할 유인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일본은 발전 용량 입찰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 참여를 확대할 예정이며, 한국 역시 환경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아시아 발전용 석탄 가격의 기준인 호주 뉴캐슬 선물 가격은 지난 26일 톤당 145.9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들어 약 30% 상승한 수준으로, 2024년 이후 최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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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호주 뉴캐슬 석탄 선물가격 추이(사진=블룸버그)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맥킨지의 토니 너트슨 글로벌 석탄 시장 책임자는 “이번 사태는 더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가스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결국 다른 선택지가 없어 석탄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번 중동 전쟁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막대한 셰일가스 생산과 수출 능력 덕분에 미국 천연가스 가격은 현재 MMBtu당 약 2.9달러로, 지난해 말(3.68달러) 대비 오히려 하락한 상태다. 다만 석탄 사용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으로 미국 내 석탄 산업은 다시 활력을 얻는 모습이다. 실제로 미 에너지기업 테라 에너지 센터는 알래스카에서 추진 중인 석탄 화력발전 프로젝트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이 추진되는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석탄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석탄 수요가 2027년까지 1.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세계자원연구소(WRI)의 더그 아렌트 선임연구원은 “2026년에는 전쟁 이전 가정에 기반한 전망만큼 석탄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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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연합)

◇ “문의 폭증"…전기차·태양광 주목하는 소비자들


이처럼 각국 정부가 석탄을 통해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청정에너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중고 전기차 판매업체 에버의 막시밀리안 쿼터머스 공동 창업자는 “거의 모든 고객과의 대화에서 유가 상승이 언급되고 있다"며 “최근 몇 주간의 수요 증가세는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강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영국 자동차 플랫폼 오토트레이더에 따르면 이번 전쟁 이후 전기차 문의는 약 30% 증가했다. 덴마크 중고차 플랫폼 빌바센에서도 전기차 검색 건수가 주당 최대 8만 건 늘어나며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중국 전기차 업체 BYD 매장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전기 삼륜차가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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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연간 태양광 설치량 추이(사진=블룸버그)

태양광과 히트펌프 등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독일 태양광 업체 솔라한델24의 야닉 놀덴 최고경영자(CEO)는 “난방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이 선택을 바꾸고 있다"며 “태양광 관련 문의가 세 배로 늘고 매출도 전월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전쟁 이후 히트펌프 설치 문의가 약 30% 증가했고, 태양광 관련 문의도 평균 대비 27% 늘었다. 3월 첫 3주 동안 태양광과 히트펌프 판매는 전월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증가했으며 전기차 충전기 판매도 2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필리핀의 경우 정부가 태양광 설치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미국 태양광 업체 선런의 메리 파월 CEO는 “사람들은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해결책을 찾는다"며 “현재 수요 증가 역시 이러한 심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했다.


◇ '가교연료' 흔들리는 천연가스…에너지 구조 재편 신호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에너지 위기는 장기적인 전환을 촉발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 개선과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 혁신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고유가는 유럽과 중국의 태양광 및 배터리 투자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각국 정부와 소비자 모두 탄소중립보다 에너지 확보에 더 무게를 두는 상황에서 천연가스의 '가교 연료' 역할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천연가스는 석탄보다 탄소 배출이 적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평가받아왔지만 이번 중동 전쟁으로 이러한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현재 재생에너지 확산이 가속화되는 것은 자국 내에서 생산 가능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라며 “이같은 흐름은 기후변화가 아닌 에너지 안보가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사만다 다트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공동 책임자는 “우리는 지금 두 번째 대규모 에너지 공급 충격을 목격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은 향후 석탄 의존도를 더 오래 유지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하고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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