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응급처방 뒤엔 공급 병행해야 시장 혼선 최소화”
갭투자 억제 공감하지만 착공·분양 로드맵 필요
“보유세, 장기보유 아닌 장기거주 중심으로 전환해야”
“정비사업 병목·자금 흐름 해소, 비주거 전환이 해법”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는 매주 건설업계 내부의 주요 현안을 깊이 있게 다루는 기획 코너입니다. 산재(산업재해)·수주전·제도 변화 등 업계가 직면한 쟁점을 현장 취재와 전문가 분석으로 입체적으로 전합니다. <편집자주>

▲서울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집값 불씨는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의 근본 안정은 수요 억제만으로는 어렵다며, 공급 확대 로드맵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서울의 현실이다. 남는 땅이 거의 없고, 재개발·재건축은 주민 반대와 절차 지연에 가로막혀 있다. 속도를 낸다 해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철거와 공급 공백이 불가피하다. 다주택자 보유분 역시 시장에 나오지 않고, 현행 보유세 체계로는 실질적인 매물 유도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실질적 공급 대안이 무엇인가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보유세를 '장기보유'에서 '장기거주' 중심으로 전환하는 세제개편 △정비사업 병목 해소 △비주거시설의 주거용 전환 △장기모기지형 공공분양 등 현실적인 공급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15 대책은 응급조치"…정부, 추가 공급대책 고심
지난 6월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4개월 여 동안 세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뚜렷한 공급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이 규제 강화로 발목이 잡히면서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공급 차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월세 시장도 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이에 무주택 실수요자와 세입자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추가 공급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SNS에 글을 올려 연내 공급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그는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공급 확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6·27과 10·15 대책이 벌어준 시간 안에 시장 안정을 이끌 실질적 공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책임자로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같은 입장이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10·15 대책 발표 때 “연내 명확한 입지와 규모를 포함한 공급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12월 중 구체적 방안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10·15 대책의 부작용·시장 불안을 잠재울 '특단의 공급 대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장 혼란을 막고 청년·서민 실수요자를 보호하려면 양질의 주택을 합리적 가격으로 공급하는 실효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같은당 이언주 최고위원 역시 “갭투자 억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급 지체와 건설 경기 위축을 감안할 때 착공·분양 일정이 포함된 로드맵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급은 신축만이 아니다"…기존 주택 순환을 살리는 세제 개편론
문제는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 내에서 뚜렷한 공급 대책을 내놓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7 대책에서 향후 5년간 135만가구 공급을 약속했지만 대부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서울 시내에선 수천가구의 신규 공급만 약속해 시장을 실망시켰다.
이에 따라 다주택 보유자들이 세제 개편을 통해 집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거나, 양도소득세·취득세 등을 조정해 시장에 매울을 공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있다. 이와 관련 최경영 전 KBS 기자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장기거주 특별공제'로 전환하자"면서 “보유가 아니라 실거주 기간이 길수록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정기간이 지나면 세율을 올리겠다는 신호를 주는 일몰형 세제, 주택 구입시 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제를 매기는 제도 등의 아이디어도 내놔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주택 보유자들이 향후 주택 가격 상승을 예상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도심 공급의 심장부는 정비사업"…규제 병목·자금 흐름이 열쇠
전문가들 중에는 서울 도심 공급의 핵심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택지 개발로는 속도가 나기 어렵고, 도심 공급은 정비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분양가상한제 같은 병목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며 “공공부지 개발도 필요하지만 중앙·지방·공공기관 간 협의 절차가 복잡해 속도를 내기 어렵 다"고 진단했다. 또 “공공은 영구임대나 사회주택처럼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고, 민간은 정비사업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김제경 투미컨설팅 대표 역시 “서울 수요는 도심에 집중돼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신도시와 한국토지주택개발공사(LH) 중심"이라며 “실질적 공급 해법은 재개발·재건축 외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0·15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이주비·중도금 대출 제한이 동시에 시행돼 정비사업이 사실상 역행 신호를 받았다"며 “재초환 완화와 금융 예외 적용이 병행돼야 공급 신뢰 회복의 단초가 열린다"고 분석했다. 핵심 변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와 금융라인 복원이다.
김 대표는 “이주비·중도금·분양보증 등 자금 흐름을 풀어주지 않으면 착공과 분양 일정 모두 막힌다"며 “자금 흐름이 막히면 정책도 멈춘다. 금융 병목 해소가 공급정책의 전제"라고 말했다.
“두 달이면 수만 세대"…비주거 전환형 '속도 공급'
일부 전문가들은 비주거용 건물의 용도 전환을 가장 빠른 공급 해법으로 꼽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공실이 늘고 있는 지식산업센터나 대형 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하면 리모델링만으로 두세 달 안에 수만 세대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임대나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전환해 사회적 요구를 채우면서도 시장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며 “신규 착공 없이도 공급을 늘리는 전환형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을 매입할 때는 취득세 감면과 대출 지원을, 다주택자가 그 주택을 팔 때는 양도세 완화를 병행하면 '기존 주택 순환형 공급 구조'로 전세시장 과열과 갭투기 위험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쉽게말해 정책의 초점을 '새로 짓는 공급'에서 '움직이지 않는 기존 주택을 순환시키는 공급'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이다.
“정책보다 실행력"…이미 있는 공급계획, 속도가 답이다
3기 신도시 조기 완공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기존 공급 계획을 더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공급대책을 또 짜는 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격"이라며 “이미 3기 신도시, 공공재건축, 도심복합사업 등 다양한 대책이 발표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집행 속도와 실효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정부가 전략을 자주 바꾸면 시장이 불확실성으로 피로해진다. 일관된 메신저와 빠른 속도가 신뢰를 만든다"면서 “시장이 원하는 것은 또 다른 '대책'이 아니라 약속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는 정부의 실전 능력"이라고 지적했다.